12월이다. 창밖은 간간이 눈이 내리고 사위는 고요하다. 아파트 앞,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엔 흐릿한 가로등만 외로이 섰다. 마지막 몇 잎 남은 갈참나무 잎이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려 애처롭기까지 하다. 거실에 있어도 왠지 춥다.
그 추위를 녹여주기라도 할 양으로 메시지가 한 장 도착했다. 연하장이다. ‘다사다난했던 올해가 가고 있습니다.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엔 행복한 한 해가 되십시오.’
연하장이란 거슬러 올라 가보면 15세기 독일에서 아기 예수의 모습과 신년을 축하하는 글이 담긴 카드를 동판으로 인쇄한 것이 시작이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도 연말이면 새해면 직접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하다며 서찰을 보내거나 서울과 지방 관아의 이속(吏屬)이나 하례(下隷) 또는 각 영(營)의 군졸이 설날에 상관 집에 문안드리고 표적으로 놓고 오는 명함을 이르던 말로 세함(歲銜)이라는 풍속이 있었으니 아마 이것이 우리나라의 연하장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엔 일 년 동안 신세 진 사람이나 친지들, 윗사람에게 그들이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축복하는 문구를 적어 보내는 것이 예의였다. 그러다 보니 연하장엔 정성이 들어가기 마련이었고 내 손으로 직접 연하장을 만들어 보냈다. 그 연하장을 우체부에게 건네받아 펼치는 설렘을 통하여 정과 정이 연결되어 진 것이다.
여고 시절에도 예외 없이 카드를 만들어 보냈다. 흰색 도화지를 잘라 만든 카드 위에 수산화나트륨수용액(NaOH)에 삶아 잎맥만 염색한 갈참나무 잎을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집어 붙여 나간다. 분홍색 잎을 붙이고 엇갈리게 갈색 잎을 붙이고 연ent빛 잎을 붙이고는 속지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와 함께 ‘근하신년’ 혹은 더 멋을 내서 ‘Merry Christmas’를 적어 넣었다.
‘돌 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처럼/ 그렇게/ 맑게.’ 그 시절 나에게 보내 준 누군가의 연하장 문구다. 글씨체는 또 얼마나 잘 썼는지 아름답기까지 했는데 글씨체가 엉망인 나에겐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글씨체가 궁체였으며 연하장 문구는 어느 시인의 시를 따 온 것임을 알았어도 그때의 그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연하장의 풍속도 바꾸어 놓았다. 이메일로 연하장이 오가더니 휴대폰의 발달로 이제는 같은 문구 같은 배경으로 대량 살포되기 시작했다. 예전의 정성스럽게 만들고 손 글씨로 마음을 적어 보내던 정이 사라졌으니 받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의무만 남아 설렘이 사라지고 추억과 정(情)도 함께 함께 사라졌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옛일을 생각해보니 손수 만든 연하장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렸고, 그림에 소질이 없으면 예쁜 꽃잎이나 나뭇잎들을 두꺼운 책 책갈피에 넣어 몇 달을 말렸다가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붙이고 붓글씨로 펜으로. 저마다 정성스럽게 받는 이를 생각하며 한 마디 한 마디 글을 적어 보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우체부가 건네는 카드를 받아 들고 보낸 이를 확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고 적어 보낸 글귀들을 한 자 한 자 읽어 내리던 날의 풍경은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정성과 정성이 통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그리움과 애틋함이 모락모락 피어나 내 마음을 순화시켜 주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모두가 다 아는 안도현님의 ‘연탄재’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내가 남에게 먼저 뜨거운 사람으로 다가가야 하는 12월이다. 어렵겠지만 손수 만든 연하장을 보내는 뜨거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량 살포로 이루어지는 연하장이 아니고 이 시대에 맞는 뜨거운 마음이 담긴 연하장이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