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딱 50대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지하철 을지로입구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롯데백화점에 들어서면 지하층이 아닌 번화가 한복판에 와있는 듯 느껴진다. 높은 천장, 현란한 조명, 넓은 입구 양옆의 도넛과 햄버거 가게, 오가는 많은 이들로 인해서다. 늘 소박하고 한적한 곳만 찾다가도 때로는 이렇듯 화려하고 번잡한 곳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특히 사람들과의 복닥거림이 반갑기 조차하다. 
 
한 달여 전, 마침 그 백화점 내 한 음식점에서 후배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후배의 퇴근까지는 30여 분이나 남았기에 도넛 가게의 빈 의자에 앉았다. 뭘 먹기 위해서라기 보다 그냥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어서였다. 양지바른 곳에 하릴없이 앉아 동네 사람 구경하는 할머니가 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러면 어쩌랴. 요즘 어떻게들 차려입고 다니나, 가방이며 머플러는 어떤 스타일이 유행인가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이구!” 한숨과 함께 옆자리에 철퍼덕 앉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라기엔 조금 더, 할머니라기엔 조금 덜 나이가 들어 보이는 두 사람이 지친 다리를 쉬어가려는 모양이었다. 부스럭 부스럭 검은 비닐봉지에서 떡이며 귤을 꺼내 나눠 먹기 시작한다. 도넛 가게인데….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 ‘셀프’인 곳이라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괜히 내가 눈치가 보였다. 그러면서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그 둘에게로 은근히 내 관심이 옮겨지는 것이었다.  

빨리 돌아가는 세상
 
“집에 가서 이걸 가위로 싹둑 반 잘라야지.”
 
“글쎄… 좀 폭이 넓어 보이긴 해.”
 
“식탁보 같아 보이진 않아?”
 
“글쎄…”
 
자를까 말까 확실히 결정 못 한 마음인 양 목에 둘렀다 풀었다가 반복되고 있는 체크무늬 모직 머플러가 바로 그 대상인 것 같았다. 상표가 매달려있는 걸 보니 방금 샀나 본데 아니, 저 좋은 걸 자른다니! 망설이다가 이내 참견을 하고 말았다.
 
“저… 그거 자르시면 완전히 못쓰게 될 것 같은데요.”
 
“아니, 너무 넓어 뵈지 않수. 할아버지 줄 건데 목에 둘러매면 앞이 불룩해질 것 같아서….”

“요즘엔 앞에다 매지 않고 목 한 바퀴 빙 둘러서 양 끝을 그냥 어깨너머 가슴 앞으로 내려뜨려요. 이렇게 서로 길이가 다르게. 그게 멋이에요. 더 젊어 뵈죠. 저기 보세요. 저렇게들 하고 다니잖아요.”
 
내 머플러로 직접 시연까지 해 보였다.
 
“그런가? 아이들도 다 나가 살고 두 노인네만 덜렁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게 뭐가 뭔지 당최 알 수가 있어야지. 요즘 세상이 좀 빨리 돌아가누….”
  
‘나 홀로’ 급증
 
올해 75세라는 아줌마는 근처 남대문시장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의 순모 머플러를 샀단다. 그런데 진짜 그 제품을 싸게 산 것인지 못내 미심쩍어 확인차 백화점에 들른 거라고 한다.
  
“진짜 그 제품 맞아 보여요. 체크도 색이 은은하면서 멋있고 촉감이 순모인 것 같네요. 잘 사셨어요. 여기서 사려면 아마 값을 더 치르셔야 했을걸요.”

직접 만져본 김에 또 다른 모양으로 멋을 내 둘러 드렸더니 아줌마의 입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그리고는 이제 더는 갈등은 없다는 듯 상표 꼬리를 확 뜯어 버리는 거였다.

“아유, 그걸 왜 떼세요. 붙여진 채 드려야 방금 사온 걸로 알고 더 기분 좋아하시겠죠.”
 
얼른 원래대로 꼬리를 붙여드리면서 덧붙였다.
 
“아줌마, 결코 할머니처럼 보이지 않으시거든요. 그러니 남편분도 할아버지라 하지 마시고 아저씨라고 하세요. 요즘엔 나이의 70퍼센트가 진짜 나이라잖아요. 그러니 지금 제 나잇대와 같은 50대이신 건데요, 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0대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30~40대는 너무 차이가 나서 통할 것 같지가 않고, 60대는 별 차이가 없어 그저 그렇고, 50대가 통하면서도 뭔가 요즘 것 배울 게 많을 거 같네.”
 
20대 딸과 아들이 없으면 나 또한 그 아줌마와 뭐 그리 다르려나.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관련해서 우선 그렇고, 의식주며 청년의식 등에 대해서도 둔감해지기에 십상이리라. 직장에라도 속해 젊은이들과 계속 섞인다면 모를까, 자식들은 머잖아 집을 떠나게 되려니와 세대가 함께 살기란 점차 어려워지는 추세다.
 
‘나 홀로’ 가구가 급증해 이제 넷 중 하나 정도라지 않는가. 월평균 통신비 지출은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며 가구당 20만 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동전화 특히 스마트폰 사용 급증 때문이라지만 점점 나 홀로에서 오는 외로움 급증이 더해진 건 아닐까. 그렇다고 외로움이 그만큼 덜해지고 있는 것일까.
 
소통의 다리 놓기
 
자녀 6명을 모두 하버드와 예일대에 보내고 그중 둘은 미 행정부 고위직에 오르는 등 자녀교육의 대명사이자 세계적 석학인 전혜성 박사. 여든 중반의 그녀는 저서에서 자신의 미국 생활터전인 비영리 노인복지시설 휘트니센터의 ‘브리지(Bridge)'를 자랑하고 있다. 말 그대로 세대를 뛰어넘어 다리를 놓고 소통하자는 취지에서 센터 입주민들과 고등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란다.
 
학생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니 자녀와 부모세대와의 가교역할에서 나아가 조부모세대로까지 다리가 걸쳐지는 셈이다. 이곳저곳 경제성도 별로 없는 다리를 건설하느니 진정 놓아야 할 건 이렇듯 세대와 세대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브리지가 아닐까. 가속화되는 고령화와 함께 늘고 있는 외로운 노인들, 물리적 또 정신적으로 급증하는 나 홀로 청춘들. 서로 간 소통의 다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지고 있다. 전 박사는 말한다.
 
“모든 성별과 세대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나이 든 세대도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팔순 할머니도 여덟 살 소녀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그 누군가의 존재부터 인정하고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럴 때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는 가치 있는 삶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