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뇌가 표현하는 형상이다. 뇌가 없으면 얼굴도 있으나 마나다. 세상은 똑같은 인형은 있어도, 똑같은 얼굴의 인간은 없다. 전에도 없고, 뒤에도 없을 거다. 윤회가 있다 해도 같은 얼굴은 아마 없을 거다. 혹자의 말로는 같은 얼굴의 사람이 생길 확률은 1014이다.
글도 뇌가 표현하는 형상이다. 근육과 기관을 통해 얼굴이라고 하는 무늬를 만들 듯 글은 배열, 어의(語意), 말투로 조합되어 복잡한 심경과 의사를 표시한다. 글은 제2의 얼굴이며 타자(他者)에 인상을 끼친다. 글에 손가락이 있으면 지문이 다를 거다.
글은 간결하면 산뜻해진다. 늘어지면 두껍고 무거워진다. 산뜻하면 탄력도 나고 머리로 쏙 들어와 이것저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형성하고, 집대성되어 사회변혁을 몰고 오는 힘도 생긴다. 글이 사회 변혁의 힘으로 변환된다.
글과 말은 2위(位)1체(體)다. 내 입으로 한 말이나, 남의 입에서 나온 말은 뇌의 생각이거나 마음의 뜻이다. 말은 글로 응결된다. 응결된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순도 높게 블랙홀처럼 강력히 응축되면 어느 충분한 변혁의 임계점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엇으로 세상에 출현한다.
글로 마주하는 것은 멀리서든 혹 가깝게든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글은 깊게 읽으면 그 사람의 뇌를 둘러싼 그늘과 주름과 혹은 생기도 보여준다. 상대가 붓다나 예수라면 심오하거나 원대한 지혜가 점진적, 혹 돈오적으로 그 경전을 겸허히 읽는 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인간의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성장만큼 성숙한다. 고도의 문명은 고도의 문화가 따라야 살만하다. 고도의 문명이 비록 우주를 개척하는 수준이라도 몸은 여전히 입과 목구멍과 소화기관과 홍문(肛門)을 그대로 가진다. 인간의 몸에서 뇌만 남기고 퇴화시키거나, 아니면 그걸 다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전기적인 변화나 양자적 변화를 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어 생물 칩이든 실리콘 칩이든 어딘가에 쑤셔 넣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건 중력의 영향을 받거나 생리적으로 식물이나 동물로부터 혹 태양이나 달 같은 천체와 교감할 수 있는 신체를 상실하는 불완전한 생명체가 되는 게 아닐까? 새로운 전자종(種)의 출현이 될 거다.
문자로 인간은 문명을 열었다. 국가조직이 출현하고, 사람은 계발 되었다. 암송 능력이 상대적으로 얕고 짧아도 인간은 서적을 통해 시공을 넘어 생각과 창의를 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종교의 초기 단계는 구전과 암송이었다. 인간의 암송 능력과 구전 능력은 퇴화했지만, 문자의 체계로 구체적이고 오래갈 수 있는 힘을 대신 얻었다.
글이 뇌라면 사진은 빛이다. 감동이 없는 사진은 피사체에서 반사된 빛을 제대로 담지 못해서다. 글도 뇌나 마음에서 우러나야 짧아도 짧지 않고, 길어도 길지 않은 글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