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어김없이… 돈 상자 놓고 떠난 '全州 얼굴없는 천사'

30일 오전 11시 15분쯤 전북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직원 문서윤씨가 받은 전화에선 중·장년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얼굴 없는 천사 비석 뒤에 박스를 두고 가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문씨가 답도 하기 전에 전화는 끊겼다.

노송동에서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의 세밑 전설이 이어졌다. 지난 2000년부터 숨은 기부 14년째인 천사는 올해도 '천사마을' 기념비 뒤에 약 5000만원을 내려놓고 홀연히 떠났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10여일 전부터 언제 걸려올지 모를 그의 전화에 마음을 졸였다. 올해가 거의 다 가면서 그가 못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지 모르는데, 언제까지나 선행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말을 나눠왔다.

천사비 아래에는 작년처럼 A4용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돼지저금통과 캔 저금통 아래에 5만원짜리 지폐 다발이 놓여 있었다. 직원들이 세었더니 4924만6640원이었다. 그는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어렵더라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메모를 A4용지에 타이핑해 두었다.

얼굴 없는 천사가 이날까지 15차례 노송동 주민센터에 보내 온 돈은 모두 3억4699만7460원에 이른다. 2000년 4월 한 초등학교 남학생이 '심부름'이라며 민원대 위에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놓고 간 뒤 세모만 되면 중·장년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마다 주민센터 옆 공중전화 부스, 화단, 승용차 아래 등에 현금이 든 쇼핑백이나 종이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의 실체를 놓고 여러 풍문이 돌았다. 동네 대형 음식점이나 유흥주점 사장이라는 추측도 돌았다. 12월 하순이면 여러 방송 매체 종사자가 카메라를 들고 그를 촬영하러 오기도 했다. 재작년 12월엔 천사의 실체를 밝혀내겠다는 기자를 주민들이 거짓 제보로 허탕 치게 하는 스토리를 담은 연극 '노송동 엔젤'이 전주 소극장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전주시는 "주민센터 주변 CCTV로 그의 모습을 찾아낼 수도 있으나, 깊은 뜻을 헤아려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전주시는 2010년 1월 노송동 주민센터 옆 화단에 작은 '얼굴 없는 천사' 기념비를 세우고 주민센터 옆 대로에 '천사마을'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주민들은 이듬해부터 10월 4일(1004)을 '천사의 날'로 정해 나눔과 봉사의 축제를 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