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On] 10평 낡은 집에 일곱식구… 온기 나누며 추위 버텨

"아이고, 내 정신이야."

지난 15일 오후 전북 익산 오산면. 회색 슬레이트 지붕의 오래된 시멘트 집에서 탄내가 새 나왔다. 부랴부랴 부엌문을 연 이복순(67· 가명)씨는 반쯤 타버린 김치 부침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뒤늦게 쫓아나온 박민규(13·가명)군이 "에이, 반밖에 안 탔잖아요, 할머니. 얼른 먹어요. 배고파요"라며 빙그레 웃었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민규군은 이곳에서 할아버지·할머니·아빠, 여동생 슬기(11·가명), 그리고 고종사촌 형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다. 30여년 된 시골집은 안에서도 바깥의 한기(寒氣)가 그대로 전해져 입김이 새나왔다. 민규군 가족은 33㎡(약 10평) 남짓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서로 온기(溫氣)로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서다. 이씨는 "원래 여기는 세간을 모아두는 창고였다"며 "기름보일러를 때는 옆 방에서 지낼 엄두가 안 나서 연탄보일러가 드는 방으로 급히 개조한 것"이라 했다. 이씨는 기름이 조금 남아있지만, 사나흘에 한 번씩 아이들 목욕할 때 쓸 온수를 위해 아껴두고 있다고 했다.

민규는 일곱 살 되던 해 할머니 댁으로 왔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엄마가 집을 나가고, 어릴 적 사고로 몸이 불편한 아빠와 어린 민규 남매를 거둘 사람은 할머니 이씨뿐이었다. 이씨는 지적·지체장애를 안고 있던 두 손자 최재민(18·가명)·재호(16·가명) 형제를 키우고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씨는 "우리 아버지가 복(福)을 많이 받으라는 뜻에서 내 이름을 지었는데 왜 그리 복이 없는지 그때는 정말 하늘을 원망했다"고 했다.

이씨는 30년간 천식으로 고생한 남편과 경제활동이 어려운 민규 아빠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해왔다. 4년 전부터는 허리 통증이 심해져 공공근로활동도 손을 놓았고, 지금은 민규 아빠와 재민이 형제에게 나오는 장애인 지원금으로 일곱 식구 생계를 이어간다. 그마저도 얼마 전 남편 골반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받으면서 병원비 대기도 빠듯한 형편이 됐다. 한창 사고 싶은 게 많을 나이의 민규지만 어려운 형편에 금방 철이 들었다. 동네 주민이나 친척들이 물려주는 옷을 입어온 민규는 새 옷을 사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작년까지는 외투 두 벌로 겨울을 났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고 훌쩍 크면서 이젠 다 해진 점퍼 하나로 추운 겨울을 버텨야 한다. 이씨는 "민규가 중학교 입학할 때 새 가방을 사주고 싶었지만 형편이 안돼 사촌 형들이 쓰던 가방을 물려줬다"며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는 민규에게 고맙고 또 미안했다"고 했다.

연신 수줍은 듯 아래만 내려다보던 민규는 '컴퓨터' 얘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 프로그램을 만드는 마음 따뜻한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