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증시, 나홀로 제자리걸음

올해 마지막 주식 거래일인 30일 코스피지수는 올해 첫 거래일 종가(2031포인트) 대비 1.0% 하락한 2011.34포인트로 마감했다. 올 들어 52% 상승한 일본 증시나 미국(+25%)·독일(+26%)·영국(+14%) 등 주요 선진국 증시에 비해 매우 저조한 성적표다.

2013년 한국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장 기간 바이 코리아(Buy Korea)에 나서면서 주식을 쓸어 담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펀드 환매에 나서면서 대세 상승에 접어들 만하면 고꾸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한국 증시, 나 홀로 제자리걸음

올해 유가증권시장은 역대 가장 좁은 박스권에서 움직인 지루한 증시였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올해 코스피 최고점과 최저점의 차이(278포인트)는 1980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 가장 좁은 수치"라며 "주가가 떨어지면 각국의 유동성이 흘러들어와 증시를 떠받쳤고, 반대로 증시가 상승세를 타려고 하면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이 발목을 잡은 한 해였다"고 말했다.

올해도 한국 증시는 외국인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상반기 글로벌 펀드인 뱅가드(Vanguard) 펀드가 한국을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하면서 자동적으로 10조원가량의 한국 주식을 내다 판 영향으로 국내 증시는 큰 타격을 받았다. 6월 25일 주가가 1780포인트까지 밀렸다. 하지만 미국 연준의 양적 완화(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 축소 우려가 사그라지면서 8월 23일부터 외국인은 44거래일 연속으로 14조원 이상의 주식을 사들였다. 한국 증시에 대해 '신흥국 중의 피난처(haven)'란 찬사가 잇따랐다. 하지만 가계 부채와 전세대란 등으로 '실탄'이 줄어든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받쳐주지 못하는 증시는 오래가지 못했다.

올 들어 지난 27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 투자자의 거래 비중은 46.5%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개인들의 사상 최대 '증시 엑소더스(exodus·탈출)'가 벌어진 것이다.

◇삼성전자 지고, 네이버 뜨고…'가치 투자' 빛나

대신증권이 지난 27일 기준으로 개별 종목의 시가총액을 바탕으로 증시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의 주가 하락이 코스피지수를 33포인트가량 끌어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올해 주가가 연초 대비 9.9% 하락했지만 시가총액 비중이 18%로 높아 증시를 끌어내리는 힘도 컸다. 반면 네이버는 NHN으로부터 인적 분할된 8월 말 이후 주가가 146%나 오르면서 코스피지수를 22포인트가량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올해 증시에 대해 투자 전문가들은 "'가치 투자'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진 한 해"라고 평가했다.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올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6조4853억원이 순유출됐지만 배당주 펀드에는 8643억원, 가치주 펀드에는 3513억원이 몰렸다. 황윤아 제로인 연구원은 "증시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장기간에 걸쳐 기업 내재 가치를 발굴하는 배당주·가치주가 각광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이채원 부사장은 "비록 올해 증시는 지지부진했지만 '한방'을 노리는 단기 투자가 줄어들고 중위험·중수익 금융상품을 중심으로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