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우리가 모르는 숲으로 난 길이다. 나 아닌 내가 그곳에 있다. 그 얇은 空間(공간)에 초현대적 건물도 순식간에 담긴다. 거울의 세상은 디지털 세상 같다. 구만리 창공을 나는 항공기도 이 블랙홀에 영화 속의 전우치처럼 쑤욱 빨려든다. 거울은 주위 세계의 熱的(열적) 질서도 냉정히 담긴다.
동화속의 거울은 요지경 세상이다. 어떤 시아버지가 거울을 집에 가져왔다. 시어머니가 그 거울을 보고는 이 늙은 할멈이 누구냐고 할아버지에게 쌍심지를 켜고 본다. 그 얼굴을 며느리가 보면 어떤 젊은 여자가 여기 있느냐고 눈꼬리를 치켜뜬다. 아들이 보면 웬 외간남자야 하고 부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남이 모르는 허상을 보고 눈이 먼다.
심리도 거울에 물고기처럼 잡힌다. 물리적인 것만 반영되는 게 아니다. 정적인 스틸 샷도 연속으로 잇거나, 각도를 다르게 틀면 거울은 올무 같다. 심리가 산 채로 잡힌다. 그 순간이 극명하게 투명하다.
허공에 음파도 거울은 잡을 수 있을 거다. 미세한 떨림이 음파가 미치는 주변 모든 것의 분자를 진동시키지 않겠나. 감도가 좋아 미세한 분자의 진동이나 波勢(파세)를 신호로 변환 가능한 알고리즘을 가진 극초정밀 기기가 있다면 거울을 통해서도 빛이 그리는 정도의 정밀함으로 미세한 떨림도 아마 원칙적으로 잡는 게 가능할 거다. 소리가 잡히는 거울은 아직은 과학의 세계가 미치지 못하는 마술의 세계다.
기차가 달린다. 철로는 두 가닥. 가혹한 벌을 받는 아틀라스신의 두 어깨다. 1호선 객차는 복잡하다. 영풍문고를 가던 중이다. 요새는 제본이 꼼꼼하게 된 손안에 들어오는 수첩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둘째 아들이 내 코 밑의 빈자리에 얼른 앉는다. 녀석이 불쑥 나를 올려다본다.
"아빠, 내 핸드폰 보여?"
"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그만 머리통이 카멜레온도 아닌데 스마트 폰의 화면이 객차 유리창에 보일까 뒤돌아본다. 내가 신경이 쓰였던 거다. 언제 저렇게 큰 거지? 그 窓(창) 속을 들여다본다. 어두운 배색에 게임이 한창이다.
인간은 거울에 자신의 숨은 얼굴이 비치는 것을 두려워하나 보다. 녀석의 시선이 머무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그 녀석 뒤통수에 비친 디스플레이 화면. 그 窓 너머 虛像에 초점이 모인 내 두 눈동자. 그 눈동자가 다시 비치는 유리창. 창속에 비친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과 사람의 시선이 모두 담긴다.
유리창 너머의 사람을 다시 본다. 메마른 표정의 말없는 사내도 창밖에서 같이 본다. 아이의 마음을 보려다 아이에게 보였을 내 얼굴이 보인다. 아이의 마음에 메마른 순간으로 동결되는 건 슬프다. 무표정한 분노의 눈을 언제가 보았다. 한 친척의 얼굴이다. 이제는 떨궈야겠다. 게임에 한창 열이 오른 둘째는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어느 날 이불을 푹 덮어쓴 채 궁둥이를 방바닥에 붙인 이 녀석이 말했다. "미워 해봐야 변할 게 없는 데 왜 미워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