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청마년의 아차산 해돋이 산행

겨울 새벽의 산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두꺼운 옷으로도 그 추위가 피부에 느껴지도록 차갑고 매섭다. 찬 기운을 몰고 산길을 가고 있으나 오히려 사람들의 열기에 의하여 그 차가운 기운이 스러지고 있을 만큼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지어서 어둠을 뚫고 이동을 하고 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길의 계단을 불빛에 의지하여 한 계단씩 오른다. 한 해를 보낸 후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새해가 품고 있는 산의 말을 들으면서 산길을 조용히 오르고 있다. 강동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곳으로 왔는가 싶을 정도로 새벽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걸음으로 산길이 채워지고 해를 볼 수 있는 장소로의 이동을 어둠 속에서 하고 있다. 평소의 산길에서 만나지 못하는 경건함이다.

한해의 시작을 새벽 어스름 속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시작하려 하는 의지의 움직임이 해돋이 광장을 향하고 있었다. 해돋이 광장의 넓이가 그 사람들을 다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옆길로 들어서서 평소에 바라보던 작은 구릉 위로 오른다. 해는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동안 관심이 없던 지리적인 사고까지 동원하여 새벽에 맞이하는 해돋이의 행사는 그 열기가 생각보다 뜨거움에 놀라워진다. 어느 틈에 자리를 잡았는지 언덕 위에는 밤샘을 한 듯한 텐트까지 동원되어 새해 해돋이행사라는 의식의 의미를 새롭게 전달해주고 있다.

바다에서 맞이한 해돋이는 여러 번 경험이 있었으나 집 근처 아차산에서의 해돋이 산행은 처음이다. 살아가면서 무수히 만나는 또 다른 첫 경험이다. 언제나 삶의 시간 속에서 만나는 경험에서 절실하게 깨달아가는 건 상대적인 교감의 형태이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만나는 밝음이 가장 절실함이듯이 가장 속 깊은 아픔에서만이 가장 강렬한 기쁨의 극치를 느낄 수 있음이다. 삶이 녹록지 않음도 극명한 삶의 대비에서 배워가게 된다. 산길을 오르면서 젖었던 몸이 서서히 식어가고 추위를 동반하는 새벽 찬 기운을 뜨거운 차로 녹이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달래본다.

아직도 산길 아래쪽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오르고 있었고 산 너머 동쪽에는 해가 떠오를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어둠을 품고 있으나 생애 처음 맞이하는 아차산 해돋이는 추위를 잊을 만큼의 새로운 경험이다. 구름이 과연 해를 보여 줄까 하는 의구심으로 기다리던 나의 시야에 살그머니 붉은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초승달 같은 태양이 산등성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돋이 광장에서 들려오는 북소리가 산을 울리고 사람들의 함성 속에 2014년의 태양이 찬란한 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하게 7시 47분에 갑오년 청마해의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온전한 밝음을 지닌 붉은 해가 떠오르기까지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에 비하여 참으로 순간이었다. 가장 밝은 빛을 보여주기 위하여 태양은 구름에 그 몸을 감추고 있었나 싶게 찬란한 밝음을 지니고 하늘 위로 아름답게 솟아올랐다.

바다에서 붉은빛을 펼치며 떠오르는 해가 넓음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면 산위에 떠오르는 해는 오로지 해 자체로서의 순수한 밝음이었다. 하늘 위에서 붉은빛을 뿌리면서 동그란 모습으로 올라온 해가 아름다움의 색채로 푸른 말의 정기를 온산에 뿌리고 있다. 멀고 가까운 빛의 자연스러움이 그 산 위에 겹쳐면서 펼쳐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태양의 붉음이 겹겹의 산등성이를 넘어가도 가깝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모여 있는 그 가까움의 거리에서 살짝 떨어져서 바라볼 때 태양의 떠오름이 더 확실하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새해 아침에 깨달아가는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담은 시간에 모든 사람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누군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좋은 인격을 지닌 사람은 타인이 나보다 잘되어 갈 때 그 사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으면 시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지난해보다 더 노력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어떤 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사유의 개념도 달라진다. 말은 인간처럼 무리 지어 생활하며 수천 년 전부터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오래전부터 신령한 동물로 여겨진 말은 고대 왕의 탄생 설화에도 개입되어 있다.
 
흰말이 승천한 자리에 알 하나가 남았는데 그 알에서 신라의 왕인 박혁거세가 탄생했으며 동부여 금와왕의 설화에도 눈물을 흘리는 말이 등장한다. 성격은 소심하여서 잘 놀라기도 하지만 영민한 감각을 지닌 동물로서 낙타처럼 튀어나온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 부드러움과 예민함을 함께 지니고 있는 동물이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말의 해인 청마년 첫날의 태양을 맞이하면서 올해는 어떠한 관계에서도 나의 주관적인 개념을 떠나 한 시대를 함께 공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넓은 시선으로 편안하게 꾸려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나의 까칠함을 편안함으로 전환하는 한해를 소망으로 담고 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먼저 내려간 사람들이 자신의 소망을 적어서 묶어놓은 쪽지들을 바라본다. 나도 한해의 건강과 행복을 적은 쪽지를 그곳에 묶어본다. 두어 시간의 잠을 줄이고 올라간 아차산의 산행에서 욕심부리지 않은 소박한 소망 하나가 우리들의 새해 첫날의 즐거움으로 산길을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건강과 평안함이 함께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