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最多選의원 폴 신 "건강상 문제로 물러나겠다"

6·25 때 전쟁고아에서 미국의 유력 정치인으로 성공한 신호범(미국명 폴 신·79) 워싱턴주 상원의원이 7일(현지 시각)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건강상의 문제로 즉각 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알츠하이머(치매) 증상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의원은 원래 올해 말 임기가 끝나면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최근 들어 평소에 자주 가던 장소를 찾지 못하는 등 증세가 크게 악화되면서 은퇴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현지 한인 매체인 시애틀조이뉴스가 전했다. 그는 미국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는 한인 정치인 가운데 5선으로 최다선 의원이다.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1998년 주 상원으로 정치 무대를 옮겨 내리 5선을 기록했다. 2001년엔 만장일치로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1936년 경기 파주시 금촌에서 태어난 그의 인생은 영화보다 훨씬 극적이다. 4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6세에 가출해 서울역 인근에서 거지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머슴으로 팔려간 상태였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트럭을 타고 가던 미군들에게 "초콜릿 좀 달라"고 쫓아가다가 트럭에 올라탄 뒤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됐다. 미군 부대에서 그의 별명은 '벅샷(Bug Shot·산탄총알)'이었다. 총알처럼 빨리 뛰어다니며 미군들의 잔심부름을 능숙하게 처리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성실한 태도를 눈여겨본 미 군의관 레이 폴 박사가 그를 입양해 1955년 미국으로 데리고 갔다. 그의 나이 19세 때였다.

무학(無學)이었던 신 의원은 하루에 3시간밖에 자지 않으며 독하게 공부했다. 독학으로 중·고교 과정을 마친 후 브리검영 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엔 워싱턴주립대에서 동아시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 온 지 19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는 메릴랜드대와 하와이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1992년 정계에 입문, 미국 내 한인 권익 보호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해왔다. 그는 한미정치교육 장학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매년 '미주 한인 정치인 콘퍼런스 및 차세대 리더십 포럼'을 열어 차세대 정치인 지망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또 센트럴 워싱턴대 이사, 세계입양인협회 고문, 러시아 극동기술대 명예교수,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명예교수도 맡고 있다.

신 의원은 미국에서 인종차별 해소를 위해 헌신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3년 '미국 최고 해외 이민자상'을 수상했다. 2006년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과 2008년 미국 역사와 이민사회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앨리스 아일랜드상'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