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예술의전당 물난리 때 정말 아찔했죠"

연극, 뮤지컬, 무용, 클래식, 영화계 '별'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을 수 있는 사람. 한 곳만 역임해도 '가문의 영광'이라는 공연장의 기관장을 모두 거쳐본 사람. 화려한 이력과 폭넓은 인맥으로 공연계 '대부'로 불리는 이종덕(79) 충무아트홀 사장이 자전적 에세이 '공연의 탄생'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연다.

경복 중·고등학교,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63년 문화공보부 공무원으로 예술행정의 첫발을 디딘 그는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거쳐 1995년 예술의전당 사장을 맡았다. 이후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충무아트홀로 이어지는 화려한 CEO의 길을 지나왔다.

'화려하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그랬다. 관객의 눈에는 무대 위 공연만 보이지만, 공연을 올리기까지 혹은 올리는 도중에도 식은땀 나는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하다.

최대의 '적(敵)'은 물과 불이었다. 1996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스프링클러가 고장 나 객석 1층이 물바다가 됐다. 5000t 물이 쏟아져 객석 의자가 수면 아래 잠겼다. 200명이 투입되고 기계 80대를 동원해도 모자라 화장실의 양동이와 세숫대야까지 가져와 물을 퍼냈다. 혹시나 곰팡이 냄새가 날까 봐 대형 선풍기를 돌려 냄새를 뺐다. 이튿날 공연은 무사히 올라갔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이던 2001년 1월 18일에는 대극장에서 조명 장비 과열로 화재가 발생했다. 악극 '애수의 소야극' 공연 중이었다. 모니터로 무대를 살피다 불을 발견한 이 사장은 사무실에서 대극장까지 달려가던 때를 '가장 아찔한 순간'으로 회고했다. 인명 피해 없이 관객을 대피시켰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러 어려운 걸음을 하던 날에는 전기가 나가 공연이 멈춘 적도 있다. 무대 뒤 리더로서 그를 만들어온 고민과 결단은 팔순의 대부가 여전히 현장을 지키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반백 년 역정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21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는 50년간 그가 만나고 도와온 공연계 별들이 뜬다. 이 사장을 '50년 지기 막역지우(莫逆之友)'라고 부르는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영화배우였던 문희씨, 연극배우 박정자씨, 현대무용계 대모 육완순씨,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안호상 국립극장장 등 7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