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같은 건물 20개는 있어야 글로벌 도시라 말할 수 있죠"

5년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가 베일을 벗었다. 그 모습을 누구보다 기쁘면서도 누구보다 착잡하게 바라본 이가 있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부시장)을 역임했던 권영걸(63·사진)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다. 권 교수는 당시 '디자인 서울' 정책을 이끌면서 DDP를 잉태했지만, 오 전 시장이 물러나면서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 최근 그가 '나의 국가디자인전략'(김영사)이란 책을 펴냈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디자인 아이디어 88개를 묶은 책이다.

오 전 시장의 산물인 DDP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애물단지가 됐다. 하지만 최근 내부가 공개된 이후 예상보다 높은 건축적 완성도로 재조명받고 있다.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권 교수는 DDP와 디자인 정책 얘기부터 꺼냈다. "이제 시작입니다. 자하 하디드(DDP 설계자)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멋진 건물 20여개는 있어야 서울이 글로벌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국내 건축가 차별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스타벅스가 들어왔을 때 한국 커피숍이 망할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일반인의 미각 수준을 올려 카페베네, 엔제리너스 같은 토종 커피 체인이 확산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권 교수는 "당초 DDP 목표는 '디자인의 카네기홀'이 되는 것"이었다며 "지금은 '시민 사회를 위한 디자인 공간'으로 많이 전환한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파리의 퐁피두센터처럼 해외 관광객이 반드시 찾는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서울시의 각종 디자인 정책 추진이 박 시장 취임 이후 상당 부분 차질을 빚은 것을 아쉬워했다. "'디자인 정책=혈세 낭비'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디자인이야말로 복지 증진을 위해 필요한데 마치 디자인이 복지의 대척점에 있는 정책인 양 오해를 사고 있습니다."

"서울 시장은 '행정가'여야 하는데 '정치가'인 측면이 많습니다. 디자인 서울 정책을 추진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홍보하고 오·남용한 측면도 있었지요. 이게 부메랑이 돼 잘한 정책까지 한 묶음으로 비판받은 듯합니다." 그는 디자인의 가치에 대한 정치인들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철을 보세요.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선거 포스터 예쁘게 디자인하려고 난리입니다. 포스터야말로 디자인의 집합체 아닌가요. 그러면서 디자인을 폄훼하는 건 뭔 논리인가요?"

권 교수는 이번 책을 쓴 이유도 "정치인들이 디자인, 나아가 문화를 너무 몰라서"라고 했다. 특히 통일시대를 대비한 디자인 정책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남북한에서 겹치는 국경일과 명절을 넣어 '남북 공용 달력'을 만들고, 남한의 디자인 인력이 개성 공단에서 디자인 지원을 해주는 형식이다. "통일을 말하면서 정치·경제·사회만 말합니다. 진정한 통일은 문화 통일에서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