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추기경 탄생] 원칙에는 엄격하지만… 司祭들과 카톡 즐기는 추기경

어머니는 무학(無學)이었다.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싶어 뒤늦게 한글을 깨쳤고, 자식들 키우며 농사 틈틈이 성경을 읽었다. 셋째 아들을 임신한 순간 어머니는 남몰래 기도했다. "아들이면 사제가, 딸이면 수녀가 되도록 성모님께 바치겠습니다." 그 아들이 1970년 사제 서품을 받았을 때 가장 기뻐했던 이가 염수정 추기경의 어머니 고(故) 백금월 여사였다.

◇옹기장이 신앙의 순교자 집안

염수정 추기경 집안은 19세기 초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이른바 '구교우(舊敎友)' 집안이다. 원래 서울에 살던 염 추기경의 선조는 박해를 피해 충북 진천의 옹기 굽는 '사기장골'로 은신하며 신앙을 지켜냈다. 옹기장이와 숯장수는 초기 천주교인들이 깊은 산중에 숨어 살아남기 위해 택한 직업.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조상도 옹기장이로 살았다.

◇원칙 지키는 소신맨

염 추기경의 삶은 드라마틱하기보단 모범생에 가깝다. 안성에서 태어나 서울 청운초등학교로 전학했을 때는 반에서 1~2등을 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둘째 형 염수용씨는 "어린 시절에도 친구들과 싸움 한번 하는 걸 보지 못했을 정도로 유순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당에 다닐 정도로 모범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원칙을 지키는 성격은 이미 사제를 꿈꾸는 학생들이 다닌 소(小)신학교(성신고) 시절부터 드러났다. 그 또래 청소년들이 그렇듯 동급생들은 크고 작은 일탈을 했고, 학교를 떠나 사제의 길을 포기하기도 했지만 원칙을 고수한 그는 대(大)신학교(현 가톨릭대 신학부)에 진학해 사제가 됐다.

'원칙 고수'는 지난 2005년 서울대교구 생명위원장 시절 당시 국민적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개발을 비판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19년 만의 무더위였다는 작년 여름에도 염 추기경은 에너지 절약 시책에 발맞춰 피크타임에는 에어컨과 전등을 끄고 더위를 참았다고 한다.

◇친화력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

염 추기경의 큰 장점으로 꼽히는 친화력은 역설적으로 그의 '과묵함'에서 나온다.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주교·대주교 시절에도 동기 사제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후배 사제들의 고민을 다 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요즘도 많을 땐 하루 15명까지 면담하는 '듣기의 리더십'은 서울대교구 소속 약 800명에 이르는 사제들의 이름과 얼굴을 거의 다 기억할 정도로 발전했다. 아이폰을 사용하면서는 문자 메시지와 SNS를 능히 사용하고 후배 사제들에게 카톡을 날리고 후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도 한다. 염 추기경이 장위동성당 주임 시절 신학교 추천서를 써준 '아들 신부'인 유종만 신부는 "문자 메시지 하나도 '고맙다' 한마디면 될 것을 자상하게 긴 문장으로 보내주시곤 한다"며 "과묵하게 지켜보시면서 '너를 믿는다'는 메시지를 주신다"고 말했다.

추진력도 뛰어나 교회와 관련된 일이라면 고집스러울 정도로 매진한다. 서소문 순교 성지 개발 등이 그렇다.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신학생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등산과 테니스를 즐기며 스키 실력은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