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새 도로명 주소] "집값 걸려있다" 주민 민원에 도로명 '판교' 천지

지난 1일부터 도로명주소가 전면 실시되면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 사는 주부 김모(47)씨는 요즘 불만이 많다. 운중동에 있는 김씨의 집 주소는 '산운로'가 됐지만 다른 판교 지역 대부분에는 '판교역로'나 '판교로' 등 도로명주소에 '판교' 이름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동산 시장에서 '판교'라는 브랜드 프리미엄이 얼마나 큰데 주소로 인해 집값까지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도로명 주소 실시 이후 판교신도시는 김씨처럼 '판교'라는 이름에 애착을 보이는 주민들의 성화에 '판교 천지'가 됐다. 경부고속도로 판교IC 부근에 있는 판교신도시는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흔히 '동판교'와 '서판교'로 나뉘지만 지금까지 지번 주소상으로는 판교 이름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동판교는 백현동과 삼평동으로, 서판교는 운중동과 판교동으로 구획됐고 각 동에 들어선 아파트단지 이름도 봇들마을·산운마을·원마을 등으로 정해졌다.

이 지역의 원래 이름은 두밀로·봇들로·세계로·연성로 등이었다. 봇들(洑坪)로는 신라 화랑들이 보를 세웠다는 기록을 참고해서 짓는 등 이름엔 지역의 역사성도 반영돼 있었다. 그러나 '판교'를 원하는 주민들의 잇따른 민원 제기로 2011년에 두밀로는 판교원로, 봇들로는 판교역로, 세계로는 동판교로, 연성로는 서판교로 등으로 변경됐다. 그 결과 판교신도시는 새 주소 체제에서 판교로·판교역로·판교원로 등 사방에 '판교'가 난무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주민 사이에서조차 "어디가 어딘지 감도 못 잡겠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판교'의 혜택을 못 누린 일부 주민들은 새 주소에 판교 이름을 넣어 달라며 행정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반대로 동네 발전에 저해된다며 도로명주소 변경을 요청하는 주민들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부터 시 경계인 중랑구 망우동까지 이어지는 망우로는 5.8㎞ 길이의 곧게 뻗은 대로이지만, 동대문구 주민들은 "왜 망우리 공동묘지가 연상되는 '망우'라는 이름을 우리가 써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동대문구 주민들은 두 자치구의 경계인 중랑교를 기준으로 동대문 쪽 구간은 왕산로로 바꿔달라고 계속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도 도로명 때문에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서울 김포공항에서 시작해 강서구·양천구·영등포구를 잇는 7.6㎞ 길이의 공항대로는 양천구와 영등포구를 지나는 1.8㎞ 구간만 목동공항대로로 이름을 바꿨다가 강서구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공항대로로 재통합됐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동작구 신대방동을 연결하는 5.8㎞ 길이의 신림로 중에서 동작구 구간은 주민들의 민원으로 '보라매로'로 변경됐다. "신림보다 보라매의 어감이 좋다"는 것이 민원의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