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사성어보다 우리 어록이 좋죠"

"경복궁과 창덕궁은 북악산 자락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어졌습니다. 영주 소수서원에서는 500~600년 된 울창한 소나무와 은행나무 숲을 먼저 보게 됩니다. 생명과 자연을 존중하고 평화를 숭상하던 선조의 마음이 건물과 숲의 조화로 나타난 거죠."

취임 4개월을 맞은 이배용(67)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원장은 '자연과의 조화'와 '인간에 대한 존중' '나눔과 배려'야말로 우리 전통에서 찾아낼 수 있는 한류(韓流)의 DNA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드라마의 '한류 1.0', K팝의 '한류 2.0'을 넘어서 이제는 전통문화가 뒷받침되는 '한류 3.0' 시대를 여는 데 한중연이 이바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왕실 문헌 10만점, 사대부 문헌 5만점에 이르는 한중연의 장서각 자료를 현대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학술 한류'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이 원장은 이화여대 총장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장 등을 지냈다. 한국사의 스토리텔링 작업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최근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에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콘텐츠 활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창덕궁을 방문한 각국 영부인들 앞에서 해설을 맡았던 그는 "궁궐 맨 끝자락에 있는 논과 초가집 앞에서 '이렇게 지도자가 민초들의 삶을 이해하려 했다'고 설명하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 했다.

"왜 꼭 일상 대화를 할 때 중국 고사성어만 인용해야 하죠?" 이 원장은 우리 고전에서 뽑아내는 '한국의 어록(語錄)' 작업의 성과를 올해 안에 내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서원을 테마로 한 올해 한중연 달력에도 그 일부를 실었다. 용인 심곡서원의 사진과 함께 '산을 오를 때 정상에 이르기를 기약한다면 산허리에는 이를 수 있으나, 산허리에 이르기를 기약한다면 포기하고 말 것'이라는 정암 조광조의 말을 담는 식이다.

이 원장은 최근 불거진 한국사 교과서 논란에 대해 "검인정 교과서는 자유 시장에 나간 것이므로 선택을 존중해야 하고, 외부로부터의 압력은 곤란하다"며 "대한민국이 산업화·민주화·세계화 과정에서 이룬 성취의 역사를 책 안에 녹여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