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새 회장의 一聲 "기술로 향후 30년 먹거리 찾겠다"

재계 순위 6위 대기업인 '포스코호(號)'의 새 수장(首長)에 내정된 권오준(64) 기술총괄(CTO) 사장은 철강업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기술 엔지니어'이다. 1986년 포스코에 입사한 그는 26년간 포항과 광양에서 머물며 '기술 연구' 한길을 팠다. 서울 생활은 CTO로 발탁된 2012년부터였다.

17일 오전 8시 서울 대치동 포스코빌딩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그는 "포스코를 국민의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포스코의 기술 쇄신을 이끌겠다는 각오다. 그는 올 1월 1일 포스코 차기 회장직에 지원하기 직전 지인들에게 "누가 회장이 돼도 기술로 돈을 버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포스코는 세계 최고 기술로 30년간 먹고살 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한 집념'의 '일벌레'

그는 1950년 경북 영주에서 4남1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제재소를 운영하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구 이문동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온 가족과 친척 등 10명이 살았다. 그의 친동생(4남)인 권오용 효성 상임고문은 "평소엔 온화하고 얌전한 형은 무서울 정도로 강한 집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 일화이다. 집에서 공부할 장소가 없어 부근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권 내정자는 툭하면 통행금지 시간인 밤 12시를 넘겼고 그때마다 독서실 좁은 공간에서 칼잠을 자곤 했다. 대학 시절엔 입주 과외로 생활비와 학비를 벌었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틈만 나면 이렇게 얘기했다. "피츠버그는 US스틸이 본거지인 철강도시였다. 이 회사는 신일본제철 때문에 쇠락했다. 기업이 없어지면 도시가 망하고, 멀리 보면 나라가 위험해진다. 산업의 존재 이유는 국가와 도시를 살리는 것이다."

포스코에서는 지독한 '일벌레'로 소문나 있다. 그는 2년 전 전립선 수술을 받은 후 이틀 만에 해외 출장을 떠났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담당 의사의 소견은 아무 소용 없었다. 그의 부인인 박충선 대구대 교수는 "남편은 매일 새벽 6시에 회사에 갔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집념으로 그는 포스코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기술인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자동차강판·전기강판 같은 고부가가치 강(鋼)과 신소재를 개발하는 데 일역을 맡았고 배터리 필수 소재인 리튬을 염수(鹽水·소금물)에서 직접 추출하는 신기술도 개발했다. 장영실상(1996년), 대한금속학회상(1996년), 기술경영인상(2013년)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한 인사는 "워낙 기억력이 좋고 깐깐해 그에게 보고하러 갈 때 지적당할지 몰라 벌벌 떤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부친상 부음란에 '전무' 대신 '회사원'

권 내정자는 의사 표시가 분명하고 직선적인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을 대할 때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없으며 표현이 간결하다. 자기관리 역시 철저하다. 일례로 2008년 12월 조선일보 부음(訃音)란에 실린 부친상 부고를 보면, 그의 직함은 그냥 '회사원'이다. 당시 포스코 기술연구소장이었지만, 수많은 협력사가 조문(弔問)하러 오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잡음이 나는 것을 매우 꺼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경영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일부 지적에 대해 민동준 연세대 공대 학장은 "권 내정자는 10년 전부터 '철강 공급 과잉'을 이겨낼 유일한 방법은 '포스코만이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며 "그가 일관성을 지킨다면 경영도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