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大 덫에 걸려… 국내 銀行만 수익률 4분의 1 토막

시중은행들의 지난해 실적 결산이 한창이다. 은행권에서는 지난해 시중은행들의 순이익 합계가 6조원 내외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한다. 2012년 8조7000억원과 비교해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카드대란 때인 2003년 이후 가장 나쁜 실적이다. 실적이 가장 좋았던 2007년의 15조원과 비교하면 40%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실적 악화가 일시적인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장기적인 추세가 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내 은행 ROE 18.4%→4.1% 급전직하

은행들의 수익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가 ROE(자기자본 대비 순이익률)이다. 주주들이 낸 자본금 대비 어느 정도 순이익을 내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국내 은행의 ROE는 지난해 3분기까지 4.1%에 그치고 있다. 겨우 은행예금 이자를 조금 넘는 수익률로, 2005년의 18.4%에 비하면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윤종규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은 "주식회사의 주주는 파산 위험 같은 각종 리스크를 감수하는 만큼 수익률이 최소 7% 이상은 나와야 한다"며 "4% 수준의 ROE는 기업의 존립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 위기를 겪은 미국 은행들도 ROE가 우리나라 은행보다 높다. 미국의 경우 2005년 12.4%에서 금융 위기 때 -0.7%로 추락했지만, 2012년 9.0%, 지난해 9월 말 9.5%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도 2009년 -6.3%에서 2012년 6.8%로 회복됐다.

국내 은행들은 신흥국 은행들과 비교해도 부진하다. 본지가 세계 100대 은행 중 신흥국 소속 은행들의 2012년 이익을 분석한 결과, 국내 은행들은 최하위에서 1위(농협), 3위(하나), 4위(우리), 5위(산업은행), 6위(KB), 8위(신한)를 기록했다. 한국 은행들끼리 꼴찌를 다투고 있는 것이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매킨지 분석 보고서를 보면 주주가치를 훼손하면서 개선 가능성이 없는 은행들이 전체 은행 중 38% 정도 되는데, 국내 은행들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두 자릿수 ROE는 영원히 불가능"

현재 은행들의 수익력 약화는 저금리 기조로 인한 예금이자와 대출금리 차이 감소,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 등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지속적인 악화가 설명되지 않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 경기가 회복되고 금리가 올라 작년보다 수익이 나아질 것"이라면서 "문제는 장기적인 추세인데, 앞으로 두 자릿수 ROE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크게 5가지이다. 첫째가 고령화 추세이다. 은행은 예금으로 거둔 돈을 대출해줘 수익을 내는데, 대출을 받는 젊은 층 비중이 줄고 예금을 하는 고령층 비중이 늘고 있다. 은행의 수익 기반은 감소하는 반면 이자 지급 부담은 늘어난다는 뜻이다.

둘째는 높은 인건비 구조이다. 금융그룹마다 2만명 이상의 고임금 직원들을 떠안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현 상태의 높은 인건비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면서 고임금 체제를 유지할 것이냐, 대타협을 통해 인건비를 낮추면서 고용을 유지할 것이냐 등 선택의 기로에 있다"고 말했다. 셋째가 양극화이다.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 우량 기업이나 개인은 돈을 빌리지 않는 상황에서,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기업이나 개인의 대출 부실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돈 빌려줄 곳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

넷째는 은행 이익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다. 은행이 많은 이익을 내면 이자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구태여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는 면이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일부러 고비용 구조를 유지하면서 이익을 조절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후진적인 영업 행태가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 대출 위주 영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수익 포트폴리오를 갖춰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세수·고용 창출 효과도 떨어져

은행은 일반 기업과 비교해 세수와 고용 창출 효과가 높은 산업이다.

2012년 업종별 대표기업들의 이익 대비 법인세를 나타내는 실효세율을 보면 신한금융이 22.9%로 삼성전자(20.3%), 현대자동차(22.3%), SK텔레콤(19.1%), LG화학(19.9%) 등과 비교해 상당히 높다. 또 이익은 삼성전자의 10분의 1 수준인데, 직원 수는 4분의 1이 넘는다.

일반 기업들은 설비 투자 등을 통해 법인세 감면을 받고 사람을 덜 쓸 수 있는 반면, 금융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의 이익이 계속 줄면 세수와 고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은행이 수익을 못 내고 부실이 쌓이면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대규모 공적 자금이 들어가게 된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를 혁신하고 영업 기반을 다양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