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중구 정동의 한식당 달개비. 3월 총파업을 예고한 대한의사협회와 정부가 처음으로 이곳에서 무릎을 맞댔다. 세종시에서 올라온 보건복지부 공무원과 의협 의사들은 함께 우거짓국을 먹으며 서로 입장을 확인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서울역과 가까운 접근성을 고려, 상견례 장소를 달개비로 정했다"고 말했다.
달개비 한식당의 외관. 달개비는 정·관·재계 인사들의 회합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지난 대선(大選)에서 야권 후보 자리를 놓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가리던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독 회동이 이뤄진 곳도 이곳이었다. 당시 "어떤 곳인지" 궁금해한 네티즌들의 클릭 쇄도로 달개비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문 후보는 단일화 협상 다음 날 "신비롭고 예쁜 꽃 달개비를 요즘 식물학자들이 '닭의장풀'이라 쓰는데, 달개비란 이름이 얼마나 예쁘냐"라며 이 식당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다. 사실 이곳은 안 후보의 단골 식당이다. 함재연(여·56) 달개비 대표는 "안철수 의원은 달개비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자주 찾아주셨다"고 말했다.
함씨는 원래 종로구 가회동에서 달개비 한식당을 운영해왔는데, 임대료·주차 문제로 고심하다 현 장소로 옮겨왔다. 지금 달개비가 있는 자리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인 1970~80년대 기자회견장과 명사들의 각종 회합 장소로 이름났던 '세실 레스토랑'이 있던 곳으로, 이 장소가 갖는 상징성을 달개비가 이어받은 셈이다.
이곳을 자주 찾는 단골들은 이곳의 장점으로 '격리된 구조'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달개비는 식당이라기보다 사설(私設) 회의장 개념에 더 가깝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모든 방이 따로 설치돼 있고, 방음(防音)이 잘되는 편이다. 정치인·재벌 총수·대기업 임원들이 모임 장소로 선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 한다.
한 대기업 총수는 미국 유학 시절 자신에게 터키풍 요리를 대접했던 은인을 초청, 이곳에서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단골손님만 수백명으로, 회의를 목적으로 한 단체 손님이 대부분이다. 세미나 혹은 학술 모임이 많고, 기업 전략회의나 예산안 편성 등 주요 결정이 이곳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함 대표는 "유명한 사람일수록 알은체하지 않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아예 관심을 끊는다는 철칙이 일종의 영업 비결"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