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내라고 하면 냅니까, 내고 싶게끔 만들어야죠

흔히 서울대 출신들을 '모래알'이라고 부른다. 학교 일에 관심이 적고 후배들을 위한 지원에도 인색하다는 뜻이다. 임광수(86) 임광토건 회장이 서울대 총동창회를 맡기 전까진 그랬다. 현재 서울대 동창회가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은 임 회장이 취임한 2002년 전보다 6~7배나 늘었다. 지난달 서울대 후배들이 뜻을 모아 12년간 동창회를 이끈 임 회장의 활동을 담은 책 '집념의 컴도저'를 출간해 헌정했다.

비결은 기부자가 좀 더 많은 학생에게 좀 더 많은 장학금을 '자기 이름'으로 주게 하는 것이다. 장학금은 기부금에서 나오는 이자로 지급되는데 시중은행 이율보다는 높다. 5000만원을 내놓은 기부자라면 매년 기부액의 6% 수준인 300만원 정도를 학생들에게 줄 수 있다. 임 회장이 경험과 노하우로 다른 대학보다 이율을 높일 수 있었다.

동문들의 후원금을 모아 서울 마포에 지은 총동창회관도 장학금 지급에 크게 기여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됐다. 총 300억원을 들여 2011년 완공했는데 필수 시설을 제외하곤 모두 세를 줬다. 마포대로 일대 임대료가 오르며 현재 건물로만 연 40억원의 이익을 낸다. 동창회는 이 중 25억원은 장학금, 15억원은 학교발전기금으로 내놓는다. "내 돈이 후배들을 위해 잘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 기부자들이 기쁘지요. 무조건 돈 내라고 하면 누가 냅니까. 기꺼이 돈을 내고 싶게 만들어야죠."

임 회장은 1952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충북에서 건설회사 '임공무소'를 운영했다. 총독부 직원들 등쌀에 이골 난 아버지는 토목을 전공하지 못하게 말렸다고 한다. 임 회장은 대학 졸업 후 미국 중공업회사 한국지부 부지배인을 맡았다. 하지만 1957년 부친이 돌아가시며 꿈을 접었다. "29살에 건설회사 사장이 됐죠. 모든 게 엉망이었죠. 제대로 교육받은 적 없는 사람뿐인 건설 현장은 늘 주먹구구식이었어요. 한국을 이끌 세대에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죠."

1980년대 5공 정권은 대학생의 주 수입원이던 과외를 금지시켰다. 그러자 휴학생이 많아졌다. 그는 고향 후배들을 위해 서울에 향토 기숙사 '충북학사'를 지었다.

'경영 마인드'를 도입한 서울대 동창회의 활동에 다른 대학도 관심을 보였다. 도쿄대에서 벤치마킹하러 오기도 했다.

"우리는 대학 동창회를 학연 사회를 고착시키는 부정적 측면에서 보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자기 학교를 위해 기부하고 공헌하는 건 당연한 거죠. 후배들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동창회를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