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휴가철, 40년 가까이 서로 좋은 일만 나누며 지내던 친구 P와 말다툼을 했다. 뒤돌아서면서 괜한 고집으로 '서로 부딪혔구나'를 직감했다. 나이 들수록 그러한 충격은 강해지는 것을 다시 실감한 것. 연말, 여러 친구들이 화해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막상 P의 얼굴을 보자 평소처럼 인사했다.
그 친구 P도 내가 인사한 것처럼 다른 말이 없었다. 말다툼이거나 화해 인사거나 하는 일은 서로 묵계로 넘어갔다. 그저 이심저심 매듭이 대충 지어진 것. 괜히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반년을 지내왔었으니, 참 한심한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P와의 관계가 처음과 같이 말끔하지 않았다. P가 떠오를 때마다 전화할까 말까, 아직도 음악 많이 듣느니, 산행 취미는 여전하니, 요즘 애들은 뭐하니, 하는 등등을 묻고 싶지만 P나 나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긴 다투기 이전도 지금도 그동안 묻고 물어왔던 것이란 뻔한 일들 뿐. 하여 뭐 더 물을 것이 있어 무슨 일로 연락을 해야 할까, 뭐 이런 억지 고민도 해보았다. 이 또한 쓸데없는 고민일 거라는 걸 알면서 말이다.
'이것만은 나만의 것이다'라고 붙잡고 있는 것이란, 나이가 드는 만큼 이미 먼저 있었던 것들의 되풀이거늘, 그래서 펼쳐놓으면 고만고만한 것들이리라. 그러함에도 나는 '무엇을 더 내 것'으로, 또 P 또한 마찬가지이겠거니와, '나는 다르다'며 확인하고, 쓸데없는 웃음을 지어보려 하는 것이었을까? 지금 또한, 억지로 만드는 고민으로 인해, 고민의 굴레를 나 스스로 굴리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사람들은 저마다 거친 시행착오의 결과물인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스크루지 영감처럼, 언젠가 뭐 달라진 매듭으로 한꺼번에 새로워지기를 원하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네 고민은 자신의 희망과 욕심이 서로 붙잡고 붙잡힌 채 매듭지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 꼬리에 꼬리가 이어져 그 매듭의 끝을 찾지 못하는 데서 생기리란 생각이다. 그 끝 언저리에 설 때마다 넘어지며, 또 무엇인가 억지 꼬투리를 잡으려 하는 것 때문에 수많은 갈등의 또 다른 기로에서 서는 것 아닐까. 요즘도 나는 서로 그리워하는 그 매듭들을 양손에 부여잡고 이쪽저쪽 바라보며 내 종착지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란 생각이 종종 든다. 아무리 성찰에 성찰을 한다지만 가끔은 우리는 저마다 같은 매듭을 두고 다르게 이야기하곤 한다. 다르게 말해야 편할 테니까.
원컨대, 앞으로 남은 시간의 발걸음마다, P나 나나 지금의 아쉬움을 억지로 되풀이하지 않기를, 또한 고민덩이를 앞에 먼저 던져 놓고 다가올 그것을 미리 걱정하는 일도 줄어들기를…. 덜 좋든 싫든, 크든 작든, 다른 것들과 서로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의 의미로 마무리되기를 바라본다. 해를 넘겨 P의 매듭을 살살 만져보는 지금, 이 즐거움을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다. 물론 먼저 P에게.
그랬다, 결국 있는 그대로 매듭짓는 일이란, 하고 싶은 말을, 아니 하기 싫은 말을, 서로서로 웃으며 말하고 또 들어주는 것이리라. 삶이란 계속 서로의 손을 계속 맞잡는 일의 되풀이라며, 나만의 나 사랑법이란 매듭으로 툭툭 마무리되기를 기원해 본다. 남은 날들의 더 즐거울 매듭 하나하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