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불이 들어왔다. 차 두 대가 빨간 불에 걸리지 않으려고 가속으로 내달았다.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면 차 안에 있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먼다. 남자는 주변의 도움을 청하고 그 남자의 차를 운전하여 남자를 집까지 안내하여 준 남자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차를 가지고 도망을 가지만 그도 역시 눈이 멀어버린다. 눈이 머는 현상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하얀 파도처럼 번져간다. 눈이 멀게 되는 현상은 급속도로 전염병처럼 확산이 되어 도시 전체를 공포로 몰아간다. 눈이 멀어져 버린 사람들은 그 도시에서 따로 격리되어 가고 눈이 먼 상황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만이 모여 있는 곳에서의 생활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인간 이하의 삶으로 이어지지만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인간의 감정이 지니고 있는 선과 악의 극명한 대비의 상태가 그곳에서도 일어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특이한 발상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내용은 끊임없는 상상력으로 호기심을 향하여 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한다. 전염병처럼 눈이 멀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행정부는 이들을 격리수용하고 그 수용소에는 눈이 먼 것에 대한 적응력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 그 생활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원시적이며 본능적인 생활만이 이어진다.
그 상황에서 그들 중 단 한 명 의사의 아내가 눈이 멀어 버린 남편을 따라와 눈먼 자의 흉내를 내면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어이없는 현실의 상황은 절망으로 시작되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암담함과 본능의 시간만이 지속된다. 이러한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능의 속성은 여인을 원하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여인들은 눈이 먼 것 이외에도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지울 수 없는 수치스러움의 시간을 맞이한다.
생존의 본능 앞에서 여성들의 자존감은 무참하게 무너지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의사의 아내는 남편을 따라올 때 지니고 온 가위를 발견하고 눈먼 폭력배들의 무리 중에서 우두머리 격인 남자의 생명을 가위로 중지시킨다.우리가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가상의 상황은 그 현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을 일으키게 할 만큼 처참함으로 이어지지만 그것은 책을 읽어가는 우리의 상상력의 동원일 뿐 주제 사라마구는 그 표현을 담담하게 이어간다.
"한 사람이 말을 받았다. 그 말은 죽으면서 자기가 죽을 거라는 걸 몰랐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그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이미 코앞에 닥친 어둠의 깊고 검은 우물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는 담담하게 표현되는 이 문장을 읽어가면서 말을 하는 상대가 자신의 죽음자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의 흐름 역시 줄곧 담담함으로 이어간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 처참한 불행을 껴안고 있는 것이 아닌...어딘지 모를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인 모습들이 오히려 진한 상상력을 불러오게 하는 소설은 벽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어놓고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객관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포르투갈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는 예순에 가까운 나이인 1980년 "바닥에서 일어서서"를 발표하여 일반 독자들과 비평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문장부호가 생략된 채 물이 흐르는 듯한 자유스러운 문장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에서 사회 부조리를 새롭게 해석하여, 현대 사회에서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향한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문학의 세계를 창조하여 낸 것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이전에 포르투갈어 권 작가 중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포르투갈 최고 시인의 이름을 딴 "까몽이스 상(1995년)을 수상하였다. 20여 개 언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은 전세계의 수많은 독자층을 지니고 있으나 1991년 발표한 "예수의 제2 복음"으로 정부와 사회의 박해를 받아 조국 포르투갈을 떠나는 상황이 된다.
포르투갈 작가협회의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예수의 인간적 모습을 그리려 한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가톨릭교회와 보수층으로부터 교권을 침해하는 작품이라는 거센 비난을 받게 되자 정부는 1992년 유럽문학상 후보에서 사라마구를 추천하는 것을 거부한다. 1993년 포르투갈을 떠난 사라마구는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의 사하라사막의 뜨거운 열풍이 부는 란사로떼 섬으로 이주하게 된다.
사라마구 작품의 특성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해석과 현실의 세계를 함께 병행하는 환상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문장부호의 변화와 생략을 통한 새로움으로 외부세계뿐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하게 하는 인간 내부로의 여행이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또 다른 문학세계로의 접근을 시도한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강한 의문을 던진다. "만약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사람만이 보게 된다면"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여 포르투갈이 유럽 내에서 처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상의 미래를 통하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상상을 통하여 미래의 시간을 생각하게 하고 현실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생존의 본능만 남겨진 인간들을 통하여 모순된 세계가 지니고 있는 상상력으로 하여 그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동원시키고 있음이다. 가능성이라는 현실로 바라볼 때 나타나는 그 상상력은 무한한 두려움을 동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내 것이라는 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가진다는 것에 대한 소유의 개념을 눈이 먼다는 설정으로 하여 잃어가게 하고 가진 것을 잃었을 때 우리가 깨달아가는 소유의 진정함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함의 시간을 지난 후에서 비로소 볼 수 있어도 보지 않았던 것과 보이지 않아도 보려는 것에 대한 일상의 가치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자아를 깨닫는다. 인습과 편견, 고정관념과 정형화된 일상에서 해방되어 가는 진정한 자유로움의 영혼이 무엇인가를 알아가게 하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눈먼 도시에서 눈을 뜨고 있었던 의사 부인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진정한 인간의 본질이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를 통하여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따스함으로 현실에서 잃어가고 있는 인간이 지닌 휴머니즘을 자각시킨다. 눈먼자들을 이끌고 자신의 집을 찾아온 어느 날 베란다에서 부패한 도시에 내리는 비에 몸을 씻고 있는 세 여인의 모습에서 진정한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한다.
끔찍함으로 이어지는 생황에서도 단 한 명 그들을 안내하는 빛의 여인으로 하여 우리는 일상의 어떤 절망이 다가와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잃어버릴 수 없는 나눔과 선의 속성으로 판도라의 상자에는 아직 희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마음속의 가치 하나를 찾지 못한 채 볼 수 있어도 보려 하지 않았던 가치의 본질을 찾아낼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 베풀고 사랑하면서 함께 존재하는 관계의 회복으로 세상을 이루어 갈 수 있다는 나눔의 시선을 향한 경고를 던지고 있음이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다”는 사라마구의 질타는 의사부인을 통하여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내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볼 수 있어도 보려 하지 않았던 가치의 본질은 무엇일까?
지인의 호의로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내게로 향하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