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스토리] 현지 임원 "당신은 독불장군"… 그때 깨달았다, 경청의 힘
입력 : 2014.01.21 22:16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홈플러스 도성환 사장의 '말레이시아'
상명하달 한국식 회의 현지서 마찰
직원들에게 "친구라 생각하고 말해라" 나중엔 말단도 사장실 찾아와 이야기
귀를 열고 함께 결정… 매출도 늘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독불장군'으로 살았다. 부하 직원이 실제로 그렇게 별명을 붙였다. 그러나 최근 2년 동안 그 별명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부르는 후배는 이제 별로 없다. 별명을 바꾸려고 노력한 계기는 2년 동안의 말레이시아 생활에서 얻었다.
2011년 8월부터 말레이시아 테스코 CEO(최고경영자)로 일하게 됐다. 내가 일하는 홈플러스의 모회사인 영국 테스코그룹이 나를 해외로 발령 낸 것이다. 기회이고 도전이었다.
CEO가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점포 후방 재고 제로화 프로젝트'였다. 보통 대형마트의 공간은 고객이 물건을 사는 매장, 여분의 상품을 쌓아두는 후방, 물류 차량이 드나드는 입고장 등 크게 세 곳으로 구분된다. 이 중 후방을 없애 재고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려고 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인인 직원들은 모두 이 계획에 회의적이었다. 바로 내 얼굴 앞에서 "후방을 없애는 게 무슨 효과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내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린 결론에 대해 면전에서 반대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긴말 필요없다. 시작하자"라고 했다. 회의실에는 침묵이 흘렀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임원도 있었다. 몇몇은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내 말을 했다.
"후방에 상품이 없으면 직원들은 매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재고가 적으면 점포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인 임직원들은 더 이상 반론을 달지 않았다. 직원들이 모두 이해하고 동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적인 미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식 회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한국 회사에서는 회의를 하면 주로 윗사람이 이야기하고 참석자는 메모만 한다. 나도 물론 다들 부러워하는 큰 회사(삼성그룹)에 입사해 30여년을 다니면서 이런 회의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아랫사람일 때는 받아적기만 했고, 윗사람이 돼서는 명령만 했다. 부임 초기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빨리 결정을 내려주겠다"였다. 난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던 한 말레이시아인 임원이 내게 할 말이 있다며 면담을 신청했다. 그러더니 내게 "사람들이 당신을 '독불장군(Maverick)'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흥분한 목소리도, 높은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리곤 "당신이 결론을 내리면서 말해버리면 그 후에 하는 말은 모두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말레이시아에 부임한 첫 아시아인 CEO라 기대도 크고 더 잘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실망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별다른 답도 듣지 않고 나가 버렸다.
사실 잡을 겨를도 없었다. 내가 충격을 많이 받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문화가 다르다. '빨리빨리' 문화가 자연스러운 한국과 달리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조직 문화도 다르다. 실제로 내가 부하 직원으로부터 '독불장군'이라는 말을 면전에서 듣지 않았는가. 며칠을 곰곰이 생각했다. 현지 직원과 다퉈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듣는 것이었다.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말을 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이나 해달라"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라고 생각하고 말해달라(Just say as friends)"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직원 분위기가 달라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2개월을 보낸 뒤였다.
2011년 8월부터 말레이시아 테스코 CEO(최고경영자)로 일하게 됐다. 내가 일하는 홈플러스의 모회사인 영국 테스코그룹이 나를 해외로 발령 낸 것이다. 기회이고 도전이었다.
CEO가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점포 후방 재고 제로화 프로젝트'였다. 보통 대형마트의 공간은 고객이 물건을 사는 매장, 여분의 상품을 쌓아두는 후방, 물류 차량이 드나드는 입고장 등 크게 세 곳으로 구분된다. 이 중 후방을 없애 재고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려고 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인인 직원들은 모두 이 계획에 회의적이었다. 바로 내 얼굴 앞에서 "후방을 없애는 게 무슨 효과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내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린 결론에 대해 면전에서 반대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긴말 필요없다. 시작하자"라고 했다. 회의실에는 침묵이 흘렀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임원도 있었다. 몇몇은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내 말을 했다.
"후방에 상품이 없으면 직원들은 매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재고가 적으면 점포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인 임직원들은 더 이상 반론을 달지 않았다. 직원들이 모두 이해하고 동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적인 미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식 회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한국 회사에서는 회의를 하면 주로 윗사람이 이야기하고 참석자는 메모만 한다. 나도 물론 다들 부러워하는 큰 회사(삼성그룹)에 입사해 30여년을 다니면서 이런 회의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아랫사람일 때는 받아적기만 했고, 윗사람이 돼서는 명령만 했다. 부임 초기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빨리 결정을 내려주겠다"였다. 난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던 한 말레이시아인 임원이 내게 할 말이 있다며 면담을 신청했다. 그러더니 내게 "사람들이 당신을 '독불장군(Maverick)'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흥분한 목소리도, 높은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리곤 "당신이 결론을 내리면서 말해버리면 그 후에 하는 말은 모두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말레이시아에 부임한 첫 아시아인 CEO라 기대도 크고 더 잘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실망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별다른 답도 듣지 않고 나가 버렸다.
사실 잡을 겨를도 없었다. 내가 충격을 많이 받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문화가 다르다. '빨리빨리' 문화가 자연스러운 한국과 달리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조직 문화도 다르다. 실제로 내가 부하 직원으로부터 '독불장군'이라는 말을 면전에서 듣지 않았는가. 며칠을 곰곰이 생각했다. 현지 직원과 다퉈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듣는 것이었다.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말을 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이나 해달라"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라고 생각하고 말해달라(Just say as friends)"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직원 분위기가 달라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2개월을 보낸 뒤였다.
서서히 직원들이 말을 한두마디 하기 시작하더니, 한 말단 직원이 "시간 되십니까?"라며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올 정도가 됐다. 솔직히 별것 아닌 대화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재미없어도 웃었다. 나가는 직원이 웃으며 나갔다. 한 팀장은 "열심히 하는데도 매출이 나오지 않는다"며 고민 상담을 하기도 했다. 우린 서로 1시간 이상 이야기하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의논했다. 한번 두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30년이 넘는 직장 생활 동안 아랫사람한테 닫혀 있던 귀가 열린 것이다.
나는 이때 처음 깨달았다. 함께 결정한 것이 혼자 결정한 것보다 조직을 더 열심히 뛰게 한다는 점을. 식품 코너를 바꿀 때 식품 코너 직원의 얘기를 듣고 함께 결정하니, 신기하게도 매출이 늘었다. 고객이 움직이는 선을 안내 담당 직원의 말을 듣고 바꿨더니 고객 수는 똑같아도 북적이는 현상이 없어졌다.
작년 국내에 돌아와 홈플러스 사장을 맡고 난 뒤에도 귀를 계속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원 회의 때면 담당 바이어(상품 구매 담당자)가 직접 참석해 임원을 설득하도록 한다. 서로 존댓말 쓰기도 시작했다. 생각은 말을 바꾸고, 말은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인격을 바꾼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성환 사장은] '이승한 회장 사단' 중 한 명… 홈플러스, 첫 점장출신 대표이사 등 '최초' 타이틀 여러 개 갖고 있어
1956년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후 뉴욕지사·기획팀 등을 거쳐 1995년 삼성물산 유통 부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99년 홈플러스 설립 당시 재무 담당 이사를 역임해 창업 공신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후 홈플러스 1호점인 대구점 점장, 재무·점포운영·물류·마케팅 임원 등으로 일했다.
홈플러스를 만든 이승한 회장의 ‘사단’ 중 한 명으로 홈플러스의 성공 신화를 함께했다. ‘신기록 제조기’로 불리며 ‘최초’ 타이틀을 여러 개 갖고 있다. 그는 먼저 3개 회사로 구성된 홈플러스 그룹 최초의 점장 출신 대표이사다. 또한 홈플러스가 2008년 인수한 홈플러스테스코(옛 홈에버) ‘초대’ 대표를 맡았고, 2000억원 적자를 보던 회사를 1년 만에 흑자를 내는 회사로 바꿔놨다. 2013년 5월 이승한 회장의 뒤를 이어 홈플러스 CEO로 임명됐다.
나는 이때 처음 깨달았다. 함께 결정한 것이 혼자 결정한 것보다 조직을 더 열심히 뛰게 한다는 점을. 식품 코너를 바꿀 때 식품 코너 직원의 얘기를 듣고 함께 결정하니, 신기하게도 매출이 늘었다. 고객이 움직이는 선을 안내 담당 직원의 말을 듣고 바꿨더니 고객 수는 똑같아도 북적이는 현상이 없어졌다.
작년 국내에 돌아와 홈플러스 사장을 맡고 난 뒤에도 귀를 계속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원 회의 때면 담당 바이어(상품 구매 담당자)가 직접 참석해 임원을 설득하도록 한다. 서로 존댓말 쓰기도 시작했다. 생각은 말을 바꾸고, 말은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인격을 바꾼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성환 사장은] '이승한 회장 사단' 중 한 명… 홈플러스, 첫 점장출신 대표이사 등 '최초' 타이틀 여러 개 갖고 있어
1956년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후 뉴욕지사·기획팀 등을 거쳐 1995년 삼성물산 유통 부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99년 홈플러스 설립 당시 재무 담당 이사를 역임해 창업 공신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후 홈플러스 1호점인 대구점 점장, 재무·점포운영·물류·마케팅 임원 등으로 일했다.
홈플러스를 만든 이승한 회장의 ‘사단’ 중 한 명으로 홈플러스의 성공 신화를 함께했다. ‘신기록 제조기’로 불리며 ‘최초’ 타이틀을 여러 개 갖고 있다. 그는 먼저 3개 회사로 구성된 홈플러스 그룹 최초의 점장 출신 대표이사다. 또한 홈플러스가 2008년 인수한 홈플러스테스코(옛 홈에버) ‘초대’ 대표를 맡았고, 2000억원 적자를 보던 회사를 1년 만에 흑자를 내는 회사로 바꿔놨다. 2013년 5월 이승한 회장의 뒤를 이어 홈플러스 CEO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