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래고약, 후지카 석유풍로… 대한민국 中企역사 모였다

"이야! 내가 옛날에 엉덩이에 붙이던 게 아직도 있네."

'이명래고약' 봉지를 들여다보던 한 중년 남성이 탄성을 질렀다. 이명래고약은 1950년대 중반 명래제약이 판매하던 것으로 노란 기름종이에 붙은 흑갈색 고약(膏藥)을 성냥불에 달궈서 붙이면 종기나 부스럼에 효과가 있었다. 그는 "엉덩이에 종기가 났을 때 어머니가 붙여주시면 며칠 안에 농이 쏙 빠져나와 깨끗하게 나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중소기업DMC타워 1층에 '중소기업역사관'을 열었다. 이곳엔 이명래고약을 비롯해 우리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해온 중소기업 제품 4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한국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우리와 애환(哀歡)을 함께해 왔던 중소기업 제품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쉬워 역사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중기중앙회와 정부가 15억원, 포스코가 10억원을 댔다.

투명한 유리병에 나무 마개로 덮인 1920년대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의 활명수, 초등학생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쓰리쎄븐의 학생용 가방, 한국후지카공업사의 석유풍로, 국민 영양제로 불렸던 '원기소' 등을 만날 수 있다.

추억 속 제품뿐 아니라 현재 전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홍진크라운의 헬멧, 쓰리쎄븐의 손톱깎이, 뽀로로·라바와 같은 인기 캐릭터들도 전시돼 있다. 총규모는 677㎡(약 205평)에 달한다.

조진형 역사박물관TF팀장은 "중소기업들은 2~3년만 지나도 제품을 보관하지 않는 데다 아예 없어진 회사들도 많아 옛 제품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면서 "전국을 누비면서 기업체와 개인 소장자들을 직접 만나 구입하거나 기증을 받았다"고 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업체들도 많지만 길게는 150년 이상 면면히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장수(長壽) 기업들의 제품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 철종(哲宗) 시대인 1850년대부터 역사를 이어온 전통 예산 옹기와 전통 금박 공예 업체 금박연을 비롯해 90년째 전통 유기를 만든 거창유기공방 등 전통 공예 전수자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국새를 찍는 청와대 인주(印朱)부터 동그란 가정용 인주까지 68년째 한 길만 걸어온 인주·스탬프 전문 업체인 매표화학의 인주도 전시돼 있다. 인주 뚜껑에 새겨진 월계수 잎이 둘러싼 '매票' 로고는 남녀노소 누구나 친숙하다.

198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불었던 '일제 가전제품 열풍'은 국내 중소기업엔 위기였다. 당시 여행객들은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발로는 일제 '코끼리밥솥'을 툭툭 차며 김포공항 입국장을 통과했다. 외산(外産)의 인기 속에도 1954년 창업한 PN풍년은 면면히 국산품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국내 최초의 압력솥인 '풍년압력밥솥'은 현재도 국내 압력밥솥 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추억의 학용품을 만드는 기업들도 만나볼 수 있다. 학창 시절 알록달록한 포스터칼라, 물감 등을 만드는 알파색채는 창립 52년째다. 어린이들의 스케치북뿐 아니라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도색 작업에도 알파 제품이 쓰였다.

역사관 한쪽을 차지한 화랑고무도 60년 넘게 묵묵히 어린이들의 필통을 지켜온 회사다. 네모난 '점보' 지우개와 '컴퓨터용' 지우개는 어린 시절 '지우개 따먹기'의 대표 주자였다. 지난 15년간 중국 인구보다 많은 15억개의 지우개를 중국에 수출해 지금은 중국인들이 '화랑'이란 한글을 읽을 정도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1905년부터 100년 넘게 간장·된장을 만들어온 몽고식품도 현재 일본·중국·독일·남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로 장류를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 역사관을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장(場)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김기문 회장은 "일반인은 물론 교육부와 연계해 청소년·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특별 기획전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