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29 09:56

This Man | 애니멀커뮤니케이터 김동기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동물의 생각을 가족에게 전하는 애니멀커뮤니케이터는 아직 국내에선 조금 낯선 직업이다. 6년 전 애니멀커뮤니케이터의 길로 들어선 김동기 씨는 이 일이 아픈 동물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믿는다.

지난해 김동기(52) 씨가 펴낸 <기다림의 대화>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들과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존재한다. 동물과 대화하는 일도 그런 일에 속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동물과의 한 마디 대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동물과의 대화를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성공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김 씨는 어떻게 동물과 교감하는 애니멀커뮤니케이터가 됐을까.

돌봄이 아닌 공존으로

미국 LA에서 웹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한 김 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건 2002년. 당시 ‘닷컴버블’이 붕괴되면서 업무 환경이 여의치 않아진 탓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웹디자인 일을 시작하려 할 무렵, ‘줄리’의 병세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됐다. 줄리는 그와 18년을 함께한 시추종 애견. 한국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줄리는 심장병 등으로 고생한 끝에 6년 전 세상을 떠났다.

김동기 씨와 6년째 함께 사는 페르시안 고양이 양양(13).
김동기 씨와 6년째 함께 사는 페르시안 고양이 양양(13).
김 씨가 애니멀커뮤니케이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줄리를 떠나보내자 줄리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 뭘까 궁금했다. 외국의 유명 애니멀커뮤니케이터를 만나려 했지만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불현듯 생각했다. ‘아무리 유능한 애니멀커뮤니케이터라 하더라도 나만큼 줄리를 잘 알까, 사랑할까. 분신처럼 줄리를 아낀 나는 왜 줄리와 대화할 수 없는 걸까.’ 그러면서 차츰 잠재돼 있던 동물과의 대화 가능성에 눈뜨게 됐다는 김동기 씨.

이후 김 씨는 동물과의 교감에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에 따르면, 애니멀커뮤니케이션은 결코 ‘공부’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분야다. “혹자는 유학을 다녀와야 하느냐, 자격증을 따야 하느냐 묻는다. 동물과의 교감은 그런 것들과 무관하다. 자격증을 동물에게 보여준다고 동물이 안 열던 말문을 열 리 없다. 중요한 건 이성의 지배를 받기 전, 순수한 마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그 첫 번째는 바로 자만심을 없애는 것. 동물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평등하게 대하는 것. 동물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은 물론 좋은 사료와 비싼 옷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돌봄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애니멀커뮤니케이션은 말처럼 쉽지 않다. “생각해보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긴 시간을 투자하는지. 그럼에도 영어를 마스터하기란 힘들다. 그런데 나와 다른 종족인 동물과의 대화법을 익히는 것은 만만히 여긴다. 한두 달 시도하다 안 되면 그만둬버린다. 이런 태도 역시 동물을 무시해서 그런 것 아닐까.”

김 씨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애니멀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물론 그 정도는 15~30%로, 전문가에 비해 약소한 수준이지만. 그 이상을 가능케 하는 데에는 타고난 기질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특별히 동물적인 본성이 강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 김 씨처럼 말이다.

“미국에 있을 때 우연히 만난 어떤 말을 보면서 생각했다. ‘말은 늘 서서 자는 걸까.’ 그러자 갑자기 바로 내 앞에 있던 말이 벌러덩 누워서 바닥에 몸을 비비는 것이다.” 이처럼 김 씨에겐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이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다. “내 생각이 동물에게 전달된다는 것,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됐다. 되돌아보면 그 경험들이 모두 대화의 일부였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물 10%도 안 돼

동물과의 교감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시간도 최소 2~3시간 이상 걸린다.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자마자 깊은 속내를 털어놓지 않듯 동물도 마찬가지. 일상적인 얘기부터 시작해 깊이 있는 대화로 흘러간다고. 직접적 대면이 아닌 사진을 통한 교감도 가능하다.

사진 속 그 동물의 감정이나 경험을 고스란히 전달받는 것. 마치 텔레파시처럼. 김 씨의 블로그(blog.naver.com/billykkk)에는 동물과의 교감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

반면, 애니멀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도 많다. 혹자는 그를 다만 엉뚱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가 출연한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별난(!) 인물을 소개하는 ‘화성인 vs 화성인’. “출연 제의가 왔을 때 ‘곡해되는 건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편집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출연했다. 내가 커뮤니케이션하는 현장을 찍되, 대상 동물들은 연출진이 직접 섭외했다. 내가 사전에 전혀 본적 없는 동물들로 말이다.”

방송은 성공적이었다. “뜻밖에 칭찬을 많이 들었다. 방송 후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간혹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가 있으면 ‘그 방송 보면 안다’고 얘기 해준다(웃음).”

김 씨를 찾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지금 저와 함께 사는 이 동물이 행복할까요?’다. 하지만 막상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동물은 10%도 안 된다”는 것. “많은 사람이 동물을 집에 혼자 방치해두고는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외로운 동물 입장에선 집이나 보호소나 다를 바가 없는데.” 김 씨는 “문명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동 물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고 말한다. 그만큼 동물의 자유가 박탈 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세상의 모든 동물을 구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일 같은 것이다. 사람에 의해 동물이 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아프면 갈 수 있는 병원이 많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다. 나만이라도 동물을 위해줘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이렇듯 동물의 행복을 염려하는 김동기 씨는 동물과 교감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지금 행복할까. “늘 행복한 건 아니다(웃음). 소모하는 에너지가 워낙 크고 대화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평상시에도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생활을 절제한다. 생각보다 힘든 일이기 때문에 이 직업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는 줄리와의 대화가 끊겨버릴 테니.

“다른 모든 것을 감수한다 해도, 가장 힘든 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동물의 속내를 솔직히 전하는 것. 그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늘 고민해야 한다. 동물과의 대화가 어려운 게 아니라 진심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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