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량 전문 박사가 말 그림 그린 까닭은?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면 네 발이 공중에 떠요. 이른바 '갤럽(gallop)'의 순간이죠. 그럼 저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에요."

김근섭(65) 몽골 후레정보통신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말(馬)과 몽골 얘기를 하며 수더분하게 웃었다. 그는 33년 공직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몽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말을 그렸다. 이 가운데 20점을 지난 23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양천도서관 갤러리에서 전시했다.

공무원 시절 그는 교량 전문가였다. 1976년 기술고시 합격 후 서울 광진구 건설교통국장과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본부장을 지냈다. 서울시 시설계획과장 때는 우리나라 전통 교량 건설 기술을 주제로 박사 학위도 땄다.

쉰 살이 돼서야 구청 미술 동호회에서 붓을 든 그는 거의 매일 퇴근 후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고교 시절 과수원 하는 부모 몰래 사과나 배를 그리던 취미를 30년이나 잊고 살았다. 가장 관심 가는 소재를 찾다가 전문 분야인 다리를 택했다. 충남 아산 한내다리, 전남 진도 남밖다리, 충북 진천 농다리 등을 찾아 전국을 돌았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많지만 그 대상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전업 화가들도 제 그림을 보면 '구조적 안정감이 뛰어나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한국의 다리'를 주제로 세 번이나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 주제는 말이다. "한국인과 친근한 동물 중 하나가 말이잖아요. 몽골 말은 땅딸하고 잽싸서 한국인 체형이나 성미와 비슷해요." 연구실에 캔버스를 놓고 말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몽골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염소 같은데요?" "개처럼 생겼어요!" 같은 혹평이 돌아왔다. 그림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말(馬)의 정서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80km나 떨어진 테렐지 국립공원으로 가서 몇 시간씩 말을 탔다. 말 얼굴에 머리를 비비면 말도 서로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고 한다. "말굽이 땅을 차고 오를 때의 힘찬 기운을 캔버스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가 그림에서 다리와 말굽을 가장 신경 쓴 이유다. 김 교수는 전시회에 온 관람자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건너는 다리든, 뛰는 다리든 무언가를 지탱하는 역할은 같아요. 제 그림에서 말 기운 많이 받고 청마(靑馬) 해에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