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변심… 올 증시서 22억달러어치 팔아

외국계 증권사에서는 미국의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 등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것) 규모 축소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로 한국을 꼽고 있다. 채권 중심으로는 외국인 매수세도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대규모 순매도(매도액에서 매수액을 뺀 것)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최장 순매수 기록을 세우는 등 주식시장을 이끌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외국인들은 올 들어 자동차주를 위주로 집중적인 매도세를 보이고 있고, 다른 아시아 증시와 비교해서도 한국에서의 매도세가 거세다.

◇자동차주 집중 팔자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최근 8거래일 동안 2조4000억원을 순매도했다. 하루에만 1000억원 이상 순매도하는 날도 늘고 있다. 올 들어 외국인은 현대차를 3671억원어치 순매도했다. 현대모비스도 3171억원 순매도했다. 이어 삼성중공업을 2984억원, 기아차를 2834억원 순매도했다. 자동차주는 재고 증가와 원화 강세, 엔화 약세 등으로 4분기 기대 이하의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 1월에도 폭설과 한파 등으로 미국의 자동차 판매가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외국인은 연초 이후 삼성전자·대림산업·신한지주·포스코 등도 1602억~2015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앞서 삼성중공업을 포함해 삼성전자와 대림산업은 모두 4분기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발표했다. 조선과 건설주는 업황 전망이 여전히 어두운 상황이다.

주요 아시아 신흥국과 비교해서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뚜렷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 들어 아시아 신흥국 6개국(한국, 대만,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22억740만달러를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태국과 인도에서는 각각 5억700만달러, 1280만달러를 순매도한 것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다.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6% 하락했는데, 연초 이후 주요 글로벌 30개국 중 일본 닛케이 평균(-14%)과 홍콩 H주(-12.1%), 브라질 보베스파(-8.8%)를 제외하고 넷째로 하락률이 높다.

◇외국인 매도 이유는 복합적

최근 외국인의 매도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아르헨티나발 부실 신흥국의 금융 위기 우려가 커지고 미국이 양적 완화 추가 축소를 결정하며 글로벌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하고 국내 기업 실적 역시 기대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초부터 악재가 맞물리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은 지난달 23일 이후 국내 증시에서 순매도 금액이 1000억원 이상으로 뚜렷하게 늘었다. 당시 현대차의 4분기 잠정 실적이 기대 이하를 기록하고 중국의 PMI(구매관리자지수) 잠정치가 예상을 밑돌며 국내 기업 실적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쳤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국내 기업 실적 악화의 악순환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상장사의 실제 실적이 당초 전문가들의 추정치보다 낮게 나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외국인의 매도 주문 역시 프로그램 비차익 거래를 통한 대형주 바스켓 매매가 대부분이다.

삼성증권의 오현석 연구원은 "신흥국의 위기가 외국인의 매도 배경이라면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겠지만, 우리나라 기업 실적에 대한 실망감이라면 외국인의 매도세가 길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럴 때 주가 하락 폭이 컸던 종목을 중심으로 저가 분할 매수하는 방법도 좋다고 보고 있다. NH농협증권의 조성준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반등하는 경우에는 대개 주가가 크게 내렸던 종목부터 주가가 오르기 마련"이라면서 "추가적인 악재가 나오지 않는다면 코스피지수가 더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