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티 입고 펄쩍… 내 나이 낭랑 50세

'오빠'가 돌아왔다.

1세대 인디그룹 '황신혜밴드'의 멤버였고, '희망시장'을 성공시켜 홍대 앞을 젊은 예술인들의 메카로 만들었으며, '아저씨의 생활 정치'를 실현하겠다며 마포구 의원에 도전했던 문화 게릴라 조윤석(49)씨. 3년 전 느닷없이 귀농을 선언하고 전남 장흥으로 내려갔던 그가 꽁지머리, 헐렁바지 차림 그대로 서울에 나타났다. 우주선 형상의 거대한 몸체를 드러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그의 새로운 터전. 이번엔 '한글'에 꽂혔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DDP와 모방·짝퉁·대량생산의 상징인 동대문시장의 접점을 찾을 수 없을까 고민하다 '한글'을 떠올렸죠. 대한민국이 만든 가장 창의적인 디자인이 한글이고,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거니까요. 한 해 관광객 500만명이 찾아오는 20조 규모의 동대문시장을 한류 본산으로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죠."

디자이너 100명이 서로 다르게 고안한 한글 티셔츠 100장을 7~8일 이틀 동안 DDP 이간수전시장에서 '입는 한글'이란 제목으로 전시 판매한다. 3월 개관을 앞둔 DDP의 시민 소통 프로그램 '봄장'의 하나로, 동대문 가가 스트리트 퍼니처 디자인전, 청년 푸드 디자이너 음식 열전도 함께 열린다. "영문 티셔츠에 익숙한 우리만 낯설지, 외국인들은 이미 한글 티셔츠에 열광하고 있어요. 인천공항 면세점은 물론이고 중국 시장에서도 엄청 팔리고요. 그 퀄리티를 디자이너를 통해 업그레이드해보자는 거죠. 한류가 지속되면 전 세계 티셔츠 시장의 10% 수준으로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그를 사람들은 '상상가'라고 부르지만, 조윤석 자신은 "나는 건축가"라고 고집한다. "홍익대 건축과 졸업했어요. 대학 시절부터 친환경 건축 운동 하러 다닌다고 교수님들께 찍혀 있었죠. 현대 건축은 모두 쓰레기라고 말했더니 어떤 설계 사무소에서도 취직을 안 시켜주더군요(웃음). 백수로 지내다가 김형태 만나 황신혜밴드 만들고, 이민용 감독이랑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조감독 하고, 최정화(설치 작가) 형 만나 한 20년 문화 운동 신나게 했지요."

건축의 꿈은 여전히 굳건하다. 2010년 장흥으로 농사지으러 간 것도 생태 건축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난 숙명도 있다. 아버지 조행우는 임진각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설계한 건축가. 동생 조민석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은 유망주다. "동생은 반듯했고, 전 삐딱했죠. 사고 쳐서 사랑받고 싶어 했던 자식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마침내 올해 건축의 꿈을 이룬다.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 선생과 전남 영광에서 공동체 하우스를 지어요. 생태 건축이죠. 올여름 드디어 저도 땅을 파게 됐습니다."

건축가 조윤석이 매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평점이 궁금했다. "앞으로 인류사에서는 탄생하기 힘든 건축이죠. 패널을 5만장 가까이 쓴 매우 비효율적 건축이자, 우리 상상력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준 건축? 멋진 사고를 쳤다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