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위기에 치솟는 엔화… 부활하는 수출株

신흥국의 금융 위기로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안전 자산으로 향하면서 수출주들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험 자산을 피하려는 심리가 안전 자산인 엔화의 수요를 불러일으켜, 엔화 약세가 어느덧 강세 기조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환율 문제로 골치를 앓았던 수출 업체들의 주가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악재 속에서도 상승하고 있다.

◇치솟는 엔화 가치, 미소 짓는 수출주

6일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1엔 선에서 거래됐다. 올해를 달러당 105.28엔에서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한 달 새 4%가량 절상(엔화 강세)된 것이다.

반대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070~80원 선에서 거래되며 올 들어 달러당 30원 넘게 올랐다(원화 약세).

이 같은 현상은 지난달 23일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13% 폭락한 것을 필두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터키 등의 통화가치가 하락세를 보이며 심화되고 있다. 이 통화들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는 반면, 자산 가치 보존을 위해 엔화 등 안전 자산을 찾는 움직임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수출 업체들은 미소를 짓고 있다. 페소화 가치 폭락이 있었던 지난달 23일 이후 SK하이닉스가 9% 올랐고, 삼성물산도 5.5% 상승했다. 현대모비스와 기아차도 각각 4.6%, 2%가량 상승했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이 -2%였고, 올 초부터 대형 수출주와 코스피지수가 함께 하락했던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반등이라고 증시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기업들은 지난해 전보다 많이 팔고도 이익이 줄어드는 상황을 연출했었다. 예컨대 현대차는 미국과 중국에서의 판매 호조로 지난해 해외시장 판매량이 2012년보다 7% 이상 증가하는 등 전체 매출액이 3.4%가량 늘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오히려 1.5% 줄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해외시장에선 엔화 약세를 무기로 한 일본차의 가격 공세에 수익성이 줄었고, 국내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중대형차 시장을 원화 강세와 관세 인하 등을 앞세운 다른 수입차 업체에 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전 자산 선호, 당분간 계속

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화 강세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한다.

미국이 추가 테이퍼링(양적 완화의 점진적 축소)을 단행하며 돈줄을 죄고 있는 데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지표가 부진한 탓에 위험 자산을 피하려는 심리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효진 SK증권 연구원은 "엔화 강세에 원화도 약보합세를 이어가고 있어 교역량 확대를 통한 완만한 수출 회복이 기대된다"고 했다.

일본 기업들의 주가 움직임도 이를 반증한다. 지난해 엔화 약세로 재미를 봤던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페소화 가치 폭락 이후 일본 증시에서는 샤프가 13.8% 하락한 것을 비롯해, 혼다와 소니, 도요타도 10% 이상 하락했다. 엔화 약세에 일본 기업을 매수했던 이들이 투자를 거둔 것으로,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 증시의 외국인 자금은 지난달 4912억엔이 순유출됐다.

관심은 일본 정부의 추가 부양책 여부로 쏠리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일본이 4월 소비세율 인상을 앞두고, 소비 위축을 상쇄하기 위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행이 올해 소비자물가가 1.3% 상승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이 경우 엔화는 다시 약세 기조로 변할 수 있다. 박형종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비세 인상 이후 내수 경기에 대한 위험 요소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일본 정부가 조기에 추가 양적 완화 카드를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