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내 고장 내 이웃의 유적부터 살펴보자

충북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17번 국도에서 지방도로 내려가게 되면 바로 길과 내 사이에 자리한 작은 산을 만나게 된다. 산이랄 것도 없이 개울가에 쌓아놓은 듯한 언덕이라 해도 좋겠다. 이 봉우리에 비 하나가 보인다. 제대로 비 모양을 갖추었다곤 하나 주변은 별로 정돈되지 못한 모습이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아래 중간쯤 사각으로 된 비가 또 하나 보이는데 기단도 없이 머리에 인 갓도 없이 몸체로만 초라하게 서 있다. 마지막 글자 한 자는 흙 속에 파묻혀 있기까지 하다. 위에 있는 큰비가 일제 말 충북 일대를 주름잡던 의병장 한봉수의 비이고, 그 아래 비가 그의 손에 사살된 일본 헌병의 비이다.

이 두 비가 어떻게 한 장소에 세워지게 된 것일까? 일제시대에 세워진 일본 헌병의 비는 소위 일본의 순국비인 것이다. 이 두 비는 결국 1945년 해방을 중간점으로 하여 자국의 애국비로 각기 세워진 것이고, 이 도로 이 자리가 한봉수 의병장에 의하여 일본 헌병이 사살된 곳으로 그 자리에 일본이 그자의 순국비를 세웠는데, 해방이 되자 그 비는 철거되고, 한봉수 의거비가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

초중등학교 때던가, 얇은 책으로 엮어진 ‘의병장 한봉수’의 전기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당시에도 한의병장께서 청원군에 생존해 계셨었다. 젊은 시절 향토사를 돌아본다고 진천 일대를 돌 때, 이 일제비는 옥성리 오미 마을 정자나무 밑에 사람들의 앉을 개처럼 드러누워 있었다. 아마도 해방을 맞아 분노한 마을 사람들에 의해 뽑혔으리라 생각한다. (문득 진천 뒷동산에 동강 나 누워있던 일본 신사 석주가 생각난다)

그 사건 현장, 그 자리에 ‘한봉수 의거비’를 세우고, 후인들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그들의 순국비를 역사성을 증명키 위해 이곳에 옮겨 같이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는 이렇게 두 비의 사실적인 운명을 정반대로 갈라놓은 것이다. 한봉수 의병장 의거비 안내판에 적힌 안내문을 간추려 옮겨 적어 본다.

[안내문] 의병장 청주 한공봉수 항일 의거비(요약)

(한봉수(韓鳳洙) 1884~1972 청원군 내수읍 세교리 출신) 1907년 일제에 의해 구한말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을 모아 충청도와 강원, 경상 일대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후기 의병장의 한 분이다. 한봉수 의병장은 청주 청원 진천 괴산 등지에서 30여 차례에 걸쳐 일제와 교전을 하여 많은 일본군을 처단하고 무기를 노획하였고, 일제의 우편 행낭 속에 담긴 현금을 빼앗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는 한편, 주민들에게도 나누어주어 민중 의병으로서 기반을 다졌다. 이곳은 1908년 6월 10일 한봉수 의병장이 일본 헌병 기마대의 호위 아래 우편 행랑이 진천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습격하기로 결심하고 지름길로 앞서 가 농부로 위장한 채 비사리고개 보리밭에 숨어 있다가 그들을 습격하여 일본 헌병 상등병 시마사키(鳥岐善治)를 사살하고 현금을 노획한 장소이다. 당초에는 조선총독부가 세운 일본군 순국비가 있었으나, 문백면민들이 그 비를 끌어내리고 성금을 모아 의병장을 기리는 비를 세운 것이다. 의병장과 그가 사살한 일본군의 비가 함께 있는 국내 유일의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후략)

치욕의 역사 현장도 보존하여 다시는 거듭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자는 뜻에서, 그 현장, 그 유적을 보존하자는 생각들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신성인하신 애국자들의 충절을 기리고 추앙하는 마음을 항상 가슴 속 깊이 간직하여야 할 것이다.

인근 음식점에 갔다가 어느 분에게 물으니, 그 비의 내력을 모른다고 한다. 설명해 주었더니 ‘아, 그런 비였군요!’ 한다. 역사적인 사실, 더욱이 애국의 혼을 후세에 전하려는 비를 세우기만 하면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깝게는 향토의 역사부터 세계 속 대한민국의 역사까지 잘 전해져야 한다. 후세에 이야기를 전하려고 그렇게 돌에 사적을 새겨 남기는 게 아니겠는가? 당장에라도 내 주변 가까운 곳에서부터 역사 유적 유물을 다시 한 번 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그뿐 아니라 누구나 고장의 전통, 유래를 알고 후세에 전승하려는 태도를 가져 문화의 계승자로서의 역할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이름을 얻어 불리는 산과 바위, 그리고 들꽃 들까지, 전설을 달고 있는 동네 이름, 골짜기 이름 하나하나 어디 조상님들의 생활과 떼 놓을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올바른 국사(國史) 교육을 강조하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모두 내 고장 향토사, 내 고장 유적들, 살다 간 조상들의 삶과 자취에 대하여,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과거를 잊지 않는 민족이 미래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우리 조상의 살아온 자취를 잘 보존하고 바르게 전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