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인가, 바닥인가

비둘기 빛 기와 얹은 한옥, 키 낮은 주택이 옹기종기 이웃한 서울 북촌 길. 느릿느릿 흘러가는 북촌의 시간에 메트로놈 맞춘 듯 행인들 발걸음도 더디다. 그 더딘 걸음들이 완만한 골목길 어귀, 한 갤러리 통유리 창 앞에서 잠시 멈췄다.

시선을 끈 건 유리창 속에서 유유히 '흔들리는 집'이었다. 아래는 흔들의자의 그것 같은 알루미늄 다리가, 위는 나무 바닥같이 평평한 지붕이 얹힌 집이다. 갤러리 밖에서 보면 길거리 모습이 유리창에 비쳐 마치 사람들이 갤러리 작품 속 지붕 위에 올라선 듯한 착각이 든다. 반지하 갤러리로 들어서면 비로소 관객의 시선이 집과 동일선에 놓인다. 이제 집은 원두막 같은 휴식처로 다가온다. 갤러리 안 2층에서 내려다보면 집 지붕이 펼쳐놓은 마룻바닥처럼 다가온다. 보는 방향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집. 서울 안국동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사직동'전을 열고 있는 작가 구현모(40)의 설치 작품 '지붕'이다.

"동네마다 고유의 기울기가 있어요. 이곳도 그렇고요. 안과 밖의 지면 높이 차를 활용해 지붕이 바닥이 될 수도 있고 바닥이 지붕이 될 수도 있는 모호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지난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가 갤러리 앞 경사진 골목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현모는 '집'을 모티브로 2000년대 중반부터 작업해온 작가다. 홍대 도예과, 독일 드레스덴 미술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10여년간 활동하다 몇 해 전 귀국했다. 이국 생활은 이사의 연속이었다. 자연스레 집이 지닌 '공간의 물성'에 관심을 가졌고, 시·공간을 거슬러 유년기를 보낸 사직동 집으로 기억의 주파수를 맞췄다.

"어릴 적 느낀 창문의 크기, 방향, 천장… 이런 것들이 공간감을 만들었더군요. 태어나 처음 접한 우주이기도 했고요."

작품 '동네'는 어린 시절 딱지 치고, 숨바꼭질하던 집의 자투리 공간에서 영감을 받았다. 서로 다른 나뭇조각을 이어 붙여 그가 기억하는 집의 틈새를 담았다. 미술평론가 이선영씨의 말처럼 "집이라는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파생된 낯선 체험"을 하게 되는 전시다.

작가 이불이 반지하 다가구주택의 뼈대를 살려 개조한 갤러리라 건물 바닥이 지면보다 낮다. 그래서 특이하게 갤러리 밖에서 시선을 내리깔고 감상할 때 감동이 더하다. 작가가 말하는 최적의 뷰포인트도 갤러리 밖 골목길이다. 전시 3월 7일까지. 문의 (02)734-9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