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역동적 구글, 일본은 보수적 IBM"

보험회사 ING생명, 캐피탈 업체 한미캐피탈, 생활가전 업체 코웨이, 종합유선방송사 C&M, 아웃도어 업체 네파 등 국내 유수의 기업에다 일본의 커피 프렌차이즈 업체 고메다, 테마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소프트웨어 업체 야요이, 여기에 중국 보험사 뉴차이나 라이프보험…. 한국, 일본, 중국의 내로라하는 방송·보험·저축은행·IT기업 등을 거느린 '재벌'은 누구일까?

바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MBK파트너스는 국내외 연기금으로부터 8조여원(중국·일본 포함)을 출자받아 3개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21개 기업을 인수해 수익을 내고 되팔았거나 현재 운용 중인 사모펀드이다. MBK를 놓고서 '재벌'이란 표현은 과장된 것만 아니다. MBK가 거느린 기업들의 자산만도 32조원에 이른다. 자산 규모 기준으로 한화(35조9000억원)와 두산(29조4000억원)의 중간쯤 되는 재계 11위권이다. MBK가 더 무서운 것은 그 기세다.

지난해에만 5조원을 쏟아부어 웅진코웨이, 네파, 고메다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보험사 중 1위이자 자산이 23조원이 넘는 ING생명 인수를 마무리했고, 일본 최대 통신비 징수업체인 인보이스의 지분 전량을 론스타 펀드에 매각해 투자원금 대비 2.5배의 수익을 올렸다.

최근엔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1위 케이블방송업체인 C&M의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성과 때문에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글로벌 사모펀드 전문지인 PEI가 선정한 아시아 톱4(운용자산 기준)에 들기도 했다.

회사명 MBK파트너스는 '마이클 병주 김'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이 펀드를 이끌고 있는 김병주(51) 회장의 미국 이름이다. 한국에서 현재 가장 활발하게 M&A(인수합병)를 벌이고 있는 김 회장을 최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20층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김 회장이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가진 것은 3년 만이다.

―MBK는 인수를 할 때 어떤 기업, 어떤 산업을 선호하는가?

"변동성이 큰 수출 중심 기업보다 탄탄한 영업 조직을 가진 내수 기업을 좋아한다. 또 안정된 고객층을 갖고 있는 업계 1위를 좋아한다. 재무상으로는 현금 흐름이 탄탄한 회사, 즉 에비타(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가 꾸준히 나올 수 있는 기업을 좋아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투자 원칙은 좋은 회사를 인수해서 더 좋은 회사로 만들자는 것이다. 어려운 기업을 사들여 좋은 기업으로 전환하는 사모펀드도 있지만 우리는 아니다."

―사모펀드들이 인수 후 단기(短期) 실적 중심의 전략을 펼치기 때문에 과도한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위적인 구조조정과 해고를 안 한다. 우리가 인수한 C&M이나 HK 저축은행은 7년이 지났으나, 정리해고가 없었고,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났다. MBK가 투자한 이후 기업들의 임직원 숫자는 평균 13% 늘었다."

―그런데도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이유는 뭔가.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의 출현과 성장 과정이 유별났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서유럽 같은 곳에서는 사모펀드가 점진적인 진화를 거쳤으나, 우리는 IMF 금융 위기 때 해외로부터 갑자기 들어왔다. 즉 혁명(revolution)과도 같이 시작했기 때문에 큰 충격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사모펀드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것 같다."

―ING생명 인수 때도 논란이 됐듯이 MBK의 자금 성격이 해외자본이라 론스타와 같이 '먹튀'할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우리 펀드 자금 중 해외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뜻 아닌가. 사모펀드의 투자금 총액은 상장기업들의 시가총액 같은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의 주주 중 3분의 2 정도가 해외 투자자이다. MBK도 비슷하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해외 주주가 많다고, 삼성전자가 돈 벌면 외국인 배불려 준다고 비난하지는 않지 않는가."

―인수하는 기업 중 한국 기업의 비중이 높은데.

"투자 배분의 원칙은 한·중·일 3개 경제권에 집중하고, 한국 50%, 중국과 일본 각각 25% 하는 것이다. 한국 투자 비중이 높은 이유는 가장 역동적이고, 바이아웃(기업을 사서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일) 잠재력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성장하는 단계이고, 일본은 너무 보수적이다. 일본이 IBM이라면, 한국은 구글 혹은 페이스북이다."

―통상 인수할 때 얼마 정도 내다보고 투자하는가.

"투자 기간은 5~10년을 내다본다. 연간 수익률을 25%로 본다면, 5년이면 투자금의 3배, 7년이면 5배를 회수할 수 있다. 장기적인 투자 파워가 수익으로 드러난다."

[故 박태준 前 회장의 사위… IMF 때 한미은행 되팔아 대박]

김병주 회장은=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김병주 회장은 10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동부 명문 학부인 하버포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하버드대에선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대 재학 당시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유학 중이던 고(故)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 회장의 넷째 딸 경아씨를 만나 결혼했다. 졸업 후 월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거쳐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인 칼라일에 입사했다. 칼라일에서 일하면서 IMF 외환 위기로 흔들리던 한미은행을 인수해 3년 만에 70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씨티그룹에 되팔아 M&A 업계의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칼라일그룹 부회장 등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하다가 2005년에 독립해서 MBK파트너스를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