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展 붐 만드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연초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김기창, 천경자 등 우리 근현대 주요 작가를 다룬 전시가 동시 다발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명화를 만나다-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을 비롯해 가나인사아트센터의 '박수근 회고전', 서울미술관의 운보 김기창 탄생 100주년 기념전 '예수와 귀먹은 양', 이중섭·박수근·천경자 등 근현대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된 갤러리현대의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전 등이다.

추운 날씨로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 수가 줄어 겨울은 전통적으로 미술계에선 비수기로 통하지만, 이번 겨울 전시장 열기는 '이상 고온'이다. 흥행보증수표로 통하는 이들 '국민작가'를 조명한 전시가 집중되면서 전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크게 늘었다.

◇베이비붐 세대, 근현대 미술을 소비하다

근현대 작가들을 재조명한 전시가 몰리는 현상에 대해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51~59세)가 예술의 주소비층으로 떠오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퇴직하고, 자녀도 키워놓아 금전적·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이들 세대의 최대 관심사는 몇 해 전만 해도 '육체적 웰빙'(건강)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관심사가 '정신적 웰빙'(문화)으로 확장되면서 미술관을 향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제 막 미술에 눈을 뜬 이들 50대가 가장 친숙하고 쉽게 느끼는 장르가 우리 근현대 작가들의 회화여서 이를 다룬 전시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관객 수 26만명을 돌파해 '국민전시'가 된 '명화를 만나다-한국 근현대회화 100선'의 경우 전체 관람객 중 30~35%가 베이비붐 세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박수근 회고전'은 하루 평균 1000여명의 관람객 중 40~50%가, 운보 김기창 탄생 100주년 기념전 '예수와 귀먹은 양'은 70% 정도가 50대다.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전도 50대 관람객이 30~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전시에 가면 등산복 차림의 50대 단체 관람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미술관 큐레이터 안진우씨는 "최근 들어 혼자 전시를 보는 50대 남성 관람객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했다.

표미선 한국화랑협회회장은 "지금의 50대는 백화점 문화센터나 구청이 실시하는 문화 강의를 본격적으로 접한 연령대라 전시 관람이 낯설지 않다. 게다가 윗세대인 60대에 비해 스마트폰과 SNS를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전시를 적극적으로 공유한다"고 했다.

◇피로 사회, 근현대 작가를 호출하다

근현대 작가전의 인기가 우리 사회의 불안을 방증한다는 견해도 있다. 미술사학자 최열씨는 "예술에서도 사회가 불안할수록 과거를 회고하려는 경향이 있다. IMF 외환위기로 우울했던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정리해 기획한 전시 '근대를 보는 눈'이 대표적이다. 이념·세대 갈등으로 전반적으로 우울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안정적이고 따뜻한 감성의 근현대 미술을 다시 호출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그사이 우리 전시를 주도했던 난해한 현대 미술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해석했다. "비슷비슷한 패턴의 서양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소화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에 물린 관람객들이 '우리 것'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