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볏가릿대 세우기

일 년 중 가장 달이 밝다는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 행사는 늘 뻔하다. 부럼 깨물기, 오곡밥 먹기, 귀밝이 술 마시기, 달집 놀이 등. 그러나 보기 드문 행사가 벌어진다기에 민속촌에 가보았다. 눈 내리는 날의 민속촌은 초가집들과 함께 한결 다정하게 느껴진다. 먼 옛날 시골의 어느 마을에 내가 서 있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마을 입구엔 돌을 모아 쌓아올린 소원 돌탑이 보인다. 저마다의 소원을 비는 쪽지가 돌탑에 둘러쳐진 새끼줄에 빼곡하게 꽂혀있다. 이 쪽지들은 달집과 함께 태워져 재가되어 하늘로 올라가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
 
진귀한 세시풍속인 볏가릿대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풍물패가 흥겹게 놀이를 한 후, 통째로 베어온 소나무꼭대기에 벼, 보리, 콩, 수수, 조 등 여러 가지 곡식을 새끼로 촘촘하게 엮은 망태기에 담아 주렁주렁 매달아서 마을의 장정들이 높다랗게 세우는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라고 한다.
 
소나무는 솔잎처럼 푸름과 곧은 절개를 닦으라는 의미이며, 풍년이 들어서 주머니에 담은 곡식들이 이 나무 키만큼이나 높이 쌓이게 해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키에 따라 농작물의 성장이 결정된다고 믿었기에 볏가릿대를 세울 때는 키가 작은 사람은 절대 출입을 못 하게 했다고 한다.
 
볏가릿대라는 말은 벼를 베어서 가려 놓거나 볏단을 차곡차곡 가려서 쌓은 더미를 말하는 것이다. 볏가릿대는 부잣집 근처에 세우고 부잣집에서는 술과 떡 음식을 준비하여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풍물놀이패들의 흥겨운 장단과 함께 마을사람들이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꽹과리, 징, 북을 치며 풍물놀이패가 마당을 돌며 지신밟기 놀이가 이어졌다.
 
지신은 집터와 가정을 지켜주는 신으로 땅을 밟으면서 잡신과 악귀를 쫓고 고사소리와 풍물놀이로 지신을 진정시킴으로써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비는 풍속 놀이다. 마당신, 장독대신, 마굿간신, 조왕(부엌)신 등 각각의 신에게 축원하며 집주인은 막걸리와 시루떡을 마련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덕담하며 나누어 준다.
 
전통의 민속놀이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우선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어렵게 살던 시절 서로 도우며 나눌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훈훈한 미덕을 엿 볼 수 있었다. 옆집에 살아도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지금의 현실이 삭막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