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스토리] 얼차려 받던 '154번 올빼미'… 긍정의 힘으로 일어서다

나는 고문관이었던 것 같다. 본래 굼뜨고, 느린 편이어서 군 시절 호되게 고생을 했다. 집합을 시키면 맡아놓은 꼴찌였고, 유격 훈련에서는 코스마다 낙오였다. 얼차려를 많이도 받았다. 유격 훈련 때 얼마나 많은 지적을 받았는지 아직도 '154번 올빼미'란 유격 번호가 기억이 날 정도다.

빨간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유격 조교들에게 이가 갈렸지만, 이를 갈아봐야 내 치아만 상할 뿐이라 생각을 바꿨다. "공짜로 운동시켜주는데 얼마나 좋냐. 빨간 모자, 고맙다"라는 마음으로 얼차려를 받았다.

그때 내 인생의 신조를 'will to meaning(윌 투 미닝)'으로 정했다. 직역하면 '의미에 대한 의지'인데, 나는 이렇게 풀어서 설명한다. "어떤 일이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의지를 갖고 일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2011년 4월. 34년 내 농협인의 삶 중에서 가장 험난한 시기였다. 홍보실장이 된 지 2개월 만에 외부 해킹으로 농협 전산망이 18일간 마비되는 일이 터졌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농협을 비판하는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어찌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수시로 구토가 나왔다. 출근하다 참을 수 없어 자주 차를 세우기도 했고, 기자회견 중에 몰래 빠져나오기도 했다. 3차례나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생긴 고혈압으로 혈압약을 먹고 있다.

그런데 당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홍보실장은 항상 웃고 다녔다"고 기억한다. 억지로라도 웃었다. 돌이켜 보면 그런 웃음이 있었기에 당시를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웃고, 남들에게 웃음을 주면서 힘을 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07년 하나로마트 고양센터장을 할 때도 비슷했다. 반품하러 온 고객에게 직원이 잘못 대처했는지 그 고객이 무려 6개월이나 항의를 했다. 수시로 찾아와 폭언과 고함을 지르고, 몸싸움을 벌였다. 숱하게 찾아가서 빌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싫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고객님의 말씀을 잘 알겠다"고 웃는 얼굴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그 고객은 고양센터를 가장 아껴주는 1등 고객이 됐다.

나는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의미를 두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포기를 모른다. 좀 건방진 소리 같겠지만, 내게는 '포기'란 단어는 배추를 세는 단위일 뿐이다.

얼마 전 모처럼 짬이 나 TV를 보는데 방송인 노홍철이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했다. "웃어라.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말을 이보다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그때 표현은 달랐지만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살았던 것 같다.

살다 보면 힘든 일이 닥치는 시기를 만나게 된다. "이 고비를 넘기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이 고비를 넘기면 뭐 하나. 더 큰 위기가 닥칠 텐데…"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낸다. 내 약점, 내 고비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넘어설 것인지가 중요하다.

내가 만약 군 시절 얼차려를 받으면서 욱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만약 악성 고객을 경찰에 고소하는 방법을 썼더라면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긍정적인 마음은 나를 바꾸고, 내 주변의 세상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요즘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낙심하고, 사회가 나를 몰라준다고 억울해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그러나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오늘 일자리를 못 구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힘껏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농산물 유통 전문가, 이상욱은]

1958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고와 농협대를 나와 1979년 농협에 입사하여 한 우물을 팠다. 재직 중 틈틈이 공부를 해서 서강대와 중앙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통 현장에서만 13년을 근무해 농협 내에서 최고의 유통 전문가로 통한다. 농촌지원부장, 교육연수부장, 고양유통센터장, 강서·영등포·서울양곡공판장장, 파주하나로클럽 점장, 농협유통 상록점장 등을 한 뒤 농협중앙회 홍보상무를 거쳐 지난해 6월 농업경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소비자를 끄는 유통전략', '톡톡 튀는 유통 마케팅' 등 농산물 유통과 관련한 여러 권의 책과 논문을 썼고, 한국유통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친화력이 좋고 말주변이 좋아 인기 강사로 꼽힌다. 대학과 기업체에서 농산물 유통과 관련해 강연 섭외 요청이 많다. 언젠가 동서양 고전과 현대 마케팅 이론을 접목한 책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