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나 골프, 사이클링은 비교적 흔한 레저 스포츠다. 남들 다 하는 운동이라고 의미가 덜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평범하지만 비범한 이 운동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고 유익하게 만든다.
등산 | 김인숙 한국발레협회장
“여럿이 함께 하긴 하지만 결국 혼자만의 힘으로 도달해야 하는 게 등산이다. 높은 정상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다보면 ‘해냈구나’하는 성취감을 느낀다.”
김인숙 회장 Ⓒ한국발레협회
김인숙(61) 회장은 지난 8년간 꾸준히 등산을 해왔다. 8년 전 중병을 앓으며 건강을 소홀히 한 자신을 깨달으면서부터다. 무슨 운동을 하면 좋을지 고민한 끝에 선택한 등산은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감흥을 주었다. “산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흙산이 있는가 하면 석산이 있고, 산새도 제각각이다. 그 개성 속에서 ‘인간이란 참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자연을 대하면서 새로운 감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등산의 큰 매력인 것 같다.”
어느새 등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김 회장은 한 달에 2~3번 정도 지인들과 함께 서울이나 수도권 내 가까운 산을 오른다. 이따금 일본의 대표 등산 명소인 다이센산이나 웅장함과 수려함을 고루 갖춘 중국 백석산 같은 해외 명산을 찾기도 한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곳은 국내의 험준한 악산(惡山)들.
“지금껏 다닌 30여 곳의 산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월악산이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녀온 곳인데, 왕복 7시간 코스가 너무 힘에 부쳤다. 중간쯤 오르다 탈진 직전 상태까지 갔다. 그만 주저앉아야 하나, 참고 더 가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이를 악물고 갔다. 그때 그 경험이 내게 얼마나 큰 자극이 됐는지 모른다.” 안간힘으로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등산의 묘미는 아니다. 그녀에게 산을 오르는 일은 일종의 소풍이기도 하다. “나들이 삼아 가볍게 오를 때는 산에서 먹기 힘든 카레라이스나 장어덮밥 같은 특별한 점심을 준비하기도 한다. 따뜻한 밥과 카레, 장어구이를 각각 보온도시락에 담아 짊어지고 갈 때면 동행하는 사람들이 늘 신기해한다. ‘산에서 이런 걸 먹을 수 있다니!’(웃음)”
그런 그는 등산을 통해 더욱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워낙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데다 성격이 급한 편이다. 그런데 산에 다니면서 많이 바뀌었다. 산이라는 것은 빠르게 가기보다 꾸준히 쉬지 않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보니 인내심이 생겼달까. 좀 더 가슴이 넓은, 폭이 넓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 기쁘다.” 일에서도 마찬가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호흡을 조절하고 예술적 감각을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산행에서의 경험과 어우러지면서 그 깊이를 더해주는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앞으로 이야기가 깃든 국내 명산을 두루 다녀보고 싶다는 김 회장은 한국발레협회 수장으로,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장으로 최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5월에 열리는 대한민국발레축제와 8월에 열리는 K발레월드 준비에 한창인 것. “짬을 내어 가까운 산이라도 타고 오면 피로가 풀린다”는 그녀는 시간이 나면 히말라야에 꼭 한번 오르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많은 이들이 명산으로 꼽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꼭대기까지는 힘들더라도 일단 힘이 닿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 아무래도 협회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은 힘들겠지만(웃음). 임기 끝나면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주변의 높은 산을 타면서 부지런히 연습할 생각이다.”
사이클링 | 이재언 미술평론가·도시미학연구소장
미술평론가이자 공공미술기획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재언(57) 소장이 즐기는 운동은 바로 사이클링이다. 속초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통학용 자전거와 인연을 맺은 게 그 시작. 당시 등하교 거리는 약 8㎞. 20~30분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는 이 소장. 대학을 졸업한 후 인천에서 잠시 교사 생활을 할 때도 그는 어김없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지금은 일산 자택에서 종로 사무실까지 1시간 반 거리를 자전거로 오간다. 그렇게 12년째 그는 장거리 출퇴근 중이다. “내 건강 유지 비결이다. 군대에서 무릎을 다친 후 줄곧 안 좋았는데, 자전거를 타면서 많이 호전됐다.”
이재언 소장
그러나 이 소장이 사이클링을 즐기는 것은 단지 건강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전거와 가까워진 것은 일부러 시간을 마련해 혼자 자전거여행을 다니면서부터다. 그는 비행기에 자전거를 싣고 호주, 프랑스, 중국, 일본 등지로 갔다. “가는 곳마다 다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곳은 중국 도문 두만강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강 건너편에 바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무척 신기했다.”
하지만 혼자 떠나는 자전거여행이 마냥 신나는 일만은 아니다. “공항에 닿으면 우선 조립부터 시작한다. 트렁크와 짐을 호텔로 따로 부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 분주하다보니 헬멧이나 카메라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여하튼 자전거여행은 매우 번거롭고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더구나 현지에서 사고라도 난나면? “일본 나고야 여행에서는 너무 더워 물을 많이 마셨더니 배탈이 났다. 밤새워 설사를 한 통에 더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힘이 없었다. 규슈 여행 때는 엎어져 얼굴이 다 긁힌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대체 여기를 왜 왔나?’ 후회하기도 했다는 그. 하지만 일주일 후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언제나 가슴에 뿌듯함만 남는다고. “자전거여행이란 게 힘은 들지만 돌아올 때의 그 뿌듯함 때문에 계속 하는 것 같다. 1~2달 후면 어느새 지도를 뒤지며 또 어디로 가볼까 살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장은 자신에게 자전거는 목적이 아닌 수단임을 분명히 한다. “자전거는 내 몸의 일부처럼 나와 가까이 있지만, 무작정 달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역사·문화 탐방에 관심이 많은 이 소장은 낯선 도시의 구석구석을 더 효과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자전거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자동차보다 느리긴 하지만 자동차가 볼 수 없는 공간의 디테일을 자전거는 속속들이 찾아낸다.
“예전에는 도시에서 도시로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이동한 것을 훈장처럼 여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오가는 게 좋다. 내게 자전거의 필요성은 바로 그런 것이다. 장거리 이동은 자동차나 기차로 하면 된다.”
말하자면 오랜 경험을 통해 그의 자전거는 더욱 영리해진 셈. 영리해진 자전거는 이 소장이 하는 일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그는 서울 시내 공공미술 답사를 모두 자전거로 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은 세계 최고의 ‘미술도시’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 내에는 어김없이 미술품이 설치돼 있다.
“30년 가까이 문화예술진흥법을 시행하다보니 서울은 어마어마한 예술품 소장 도시가 됐다. 자동차 타고 빠르게 지나갈 땐 잘 안 보이던 서울의 예술적 면면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단지 레크리에이션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문화체험 수단으로 보면 더 좋겠다는 그다.
현재 이 소장은 ‘신철기 문화운동’을 주창하는 문화예술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신철기 문화운동이란 기존의 억압적 철기문화(문명)의 질서에서 벗어나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는 새로운 철기문화로의 전환을 실천해가는 것.
“자전거야말로 신철기 문화의 화석 같은 존재 아닐까. 내 꿈은 자전거를 타고 문화체험을 하러 ‘공단’에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미술작품이나 공연을 감상하는 것. 공장지대에 전시된 미술품이라… 지나치게 이상적인가? 하지만 이상만은 아니다. 도시가 융성할 때 우리는 미래를 위해 이 같은 투자를 해야만 한다. 우리나라 모든 도시가 ‘문화예술공업도시’가 되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내 목표다.”
골프 | 김용국 더 리딩 호텔스 오브 더 월드 한국지사 이사
전 세계 430여 개 최고급 호텔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더 리딩 호텔스 오브 더 월드ʼ 한국지사의 김용국(46) 이사. 그가 사랑하는 운동은 다름 아닌 골프. 1998년 메리어트호텔에 근무하던 시절 1년간 방콕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그는 약간의 여유를 틈 타 일에 도움이 될 만한 운동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적당한 걸 찾던 중 골프 생각이 났다고.
비즈니스를 염두에 둔 시작이었지만, 차츰 골프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는 김 이사. 이듬해 서울로 복귀한 그는 골프 프로 레슨을 받기에 이른다. “한동안은 매일 저녁 2시간씩 골프를 쳤다. 잘 쳐야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늘 어떤 일에 임했을 때 만족할 만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그는 싱글 플레이어 수준의 실력파. 최저타 기록은 74타다. 근래 들어서는 1~2달에 한 번 주말 라운딩을 즐긴다.
김용국 이사
김 이사가 생각하는 골프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 아닌 ‘대화’다. “한번 라운딩을 하면 보통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함께 게임하는 지인들과 그만큼 긴 시간 동안 지루할 새 없이 대화를 나눈다는 얘기다. 골프가 아니라면 4~8명의 사람이 술도 없이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이야기를 어어갈 수 있겠나?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 자신과 주변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맡은 업무가 글로벌 세일즈인 까닭에 김 이사는 골프와 관련해 적잖은 혜택(?)을 얻기도 한다. “지난 10년간 해외 유명 골프장에서 라운딩할 기회가 많았다.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권하려면 먼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직접 체험해보고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한 해 평균 15곳 정도의 해외 골프장을 방문한다는 김 이사. WGC 대회가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 도랄 골프클럽도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기 전인 2000년대 초 이미 방문한 바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퍼블비치 골프클럽, 하와이 마우이 섬의 카팔루아 골프클럽, 태국 푸껫의 블루캐니언 컨트리클럽 등에서 두루 라운딩을 즐긴 그는 2012년 11월 처음 홀인원을 안겨준 필리핀 세부의 알타비스타 컨트리클럽을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꼽는다.
이 같은 경험이 업무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것은 당연지사. VIP 고객에게 골프여행을 추천·제공하는 데 활용한다. 더 리딩 호텔스 오브 더 월드에 속한 호텔들 중 100여 개 이상의 호텔이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거나 가까운 골프장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상태라고. 김 이사에 따르면, 최근 VIP 고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베트남의 더 남하이 호이안 호텔과 중국 항저우의 푸춘리조트,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더 다타이 랑카위 호텔. 또 급부상하는 곳은 베트남 다낭이라고 귀띔한다. “다낭의 최고급 호텔은 물론 다낭 골프클럽과 몽고메리링크스 골프클럽의 코스가 일품이다. 아직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조용한 환경에서 한층 여유로운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자신의 취미를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일을 위해서 앞으로 훌륭한 해외 골프장을 더 많이 발굴해 국내 시장에 소개하고 싶다는 김 이사. “해외 골프장은 멀고, 비싸다고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시간과 돈, 열정을 투자한 만큼 반드시 가치가 있다고 장담한다.”
끝으로, 김 이사는 자신과 같이 골프를 즐기는 이들에게 “너무 스코어에 얽매이지 말길” 당부한다. “공이나 자세만 신경 쓰지 말고 골프장 풍광도 두루 감상하시길 바란다. 공이 홀에 들어가면 깃발 꽂기에 바쁜데, 그러지 말고 자신이 서 있던 티박스도 다시 한번 돌아보시길. 그것이 우리가 골프를 치며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여유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