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26 09:48

Memories |

가수 주현미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사랑도 세월 가면 잊혀진다지만 잊을 수 없는 건 아~첫사랑~’이라고. 그렇다. 더욱이 요즘 같은 계절엔 이른 봄내음과 함께 실려온 첫사랑의 추억이 부쩍 가슴을 간질인다. 본지 시니어 명예기자들이 저마다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에 대해 자유롭게 썼다.

STAGE 1 얼마나 순진하게 우리가 사랑에 빠졌는지…

첫사랑의 추억은 언제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항상 마음에 남아 있는 녹지 않는 감정 덩어리 같다. 때때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사랑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볼 때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이제 거의 4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첫사랑의 추억은 어제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동시에 아득한 안개 속의 과거로 사라지기도 한다.

첫눈이 펑펑 쏟아지던 12월의 어느 날 그와 함께 시청앞 광장을 걷다 커피숍에 들어간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생일에 커다란 스누피 인형을 받고서 겨우 택시에 싣고 집으로 간 적도 있었다. 그 인형은 한참 동안 내 방에서 소중한 친구로 지냈다.

얼마 전 오랜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고 누군가 내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지금은 사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동안 한 번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은 첫사랑의 뒷이야기를 그날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얼마나 순진하게 우리가 사랑에 빠져 있었는지. 그때는 그게 첫사랑인지도 모르면서. 나도 웃고 친구들도 웃었다. 웃으면서 그때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안영임(58·영국 거주) Alex Cosmetic UK 사장


STAGE 2 나의 수호신

중학생 시절 학교 정문을 나오다 매점 입구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을 봤다. 그리고 그 사진은 나의 첫사랑이 되었고 평생의 수호신이 되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1970~80년대 최고의 인기 배우 정윤희 씨.

어린 나이에도 처음 본 순간 ‘세상에 이리 아름다운 여인도 있구나!’ 싶었다. 엽서사진을 구해 책갈피에 넣은 후 힘들고 지칠 때마다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보고 나면 힐링이 되곤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환갑이 다 됐을 정윤희 씨는 다행히(?) 일절 매스컴에 등장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아직 그녀의 옛날 모습 그대로를 첫사랑이자 수호신으로 간직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추석 때 MBC에서는 배우 정윤희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당시 나도 패널로 참석했는데 홍대 부근에서 두 차례에 걸쳐 촬영한 기억이 난다. 사실 촬영 마지막 날 정윤희 씨가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제작진은 끈질긴 설득 끝에 그녀가 출연하게 됐다고 귀띔했는데, 그 얘기를 듣자 정말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설레었다. 그러나 결국 정윤희 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촬영장엔 그녀의 꽃과 편지만 배달돼왔다.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보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내 첫사랑은 영원히 20대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는 것은 첫사랑이라는 순수한 단어가 그만큼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윤경필(54) 모웨이아카데미 원장


STAGE 3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라는 구절의 노래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여고를 졸업한 나는 재수생이 됐다.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한밤의 음악편지’를 즐겨 들었는데 파월 장병들이 가끔 펜팔을 원하는 글을 음악에 담아 청해오곤 했다.

마음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처럼 부풀던 때 우리는 ‘한밤의 음악편지’를 통해 만났다. 편지가 오고 가는 횟수가 늘수록 마음도 애틋했다. 우리 편지는 총알처럼 왔다 갔다 했는데 편지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애가 탔다. 내 답장이 좀 늦는다 싶으면 그는 연달아 몇 통씩 편지를 보냈다.

한번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작달막한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이 꼭 노래 속 ‘새까만 김 상사’ 같았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외모는 아니었지만 글 솜씨가 빼어나 맘에 들었다. 그는 가끔 전쟁터에서 잡았다는 말라리아 모기를 ‘제가 사살한 놈입니다’하며 편지에 붙여 보내곤 해서 나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친구들과 여럿이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그는 나를 한 번에 알아맞혔다.

어느덧 귀국날이 잡히고 우리는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나갈까 말까 망설여졌다. 드디어 당일, 언니한테 옷이며 핸드백까지 빌리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다 했는데, 망설임 또 망설임. 어쩌나…, 다방도 아닌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는 것도 겁이 나고…. 온갖 걱정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날,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4월의 어느 날, 결국 난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첫사랑을 생각하면 가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이옥순(65) 주부


STAGE 4 여어… 보오… 세요?”

지금도 “오빠, 같이 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앞집에 이사 온 여자애. 얼굴이 배꽃처럼 하얗던 소녀. 토끼풀빛 옷에 진달랫빛 얇은 스카프를 목에 감은 모습으로 사뿐히 걷는 모습은 나비 같았다. 그 소녀에 대한 관심은 온 동네를, 지붕 위를 까불거리며 뛰어다니던 내 눈에 차곡차곡 담겼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소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깊어만 갔다.

아버지가 약품회사에 다닌다던 소녀네는 당시 동네에서 몇 안 되는 ‘전화기가 놓인 집’이었다. 우리 집도 그 번호를 빌려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 대신 전화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이전에 한 번도 전화를 받아본 적도, 걸어본 적도 없던 나. 어디에 귀를 대고, 입을 대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여어… 보오… 세요?” 귀에 잘못 댄 건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황소처럼 눈만 꿈벅거렸다. 숙맥이었다. 잠시 옆에서 지켜보던 소녀가 전화기를 달라며 대신 받는다. 마당은 햇살로 눈부셨다.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6학년 겨울 방학 무렵, 우리 집은 다리 위쪽 잠실대교 부근으로 이사를 했다. 소녀와는 자연히 헤어진 것이다. 소식은 한참 뒤 중학생이 된 다음 부모님의 대화를 통해서야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지은이, 류마티스로 수술한대.” “류마티스?” 관심 없는 듯 대화를 엿들었다. 이후 소녀가 살던 집을 몇 번이고 지나갔지만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40여 년이 지나도록 그때 그 동네는 거의 변함이 없다. 하얀 얼굴, 배시시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고른 치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정종온(50) 번역가


STAGE 5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잘 있었지요? 오랜만에 그대 떠올리는 지금,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참 오래 되었군요. 이렇게 예쁜 기억에게 말을 걸어보다니. 이 아름다운 시간, 얼마나 편안한지 모른답니다. 매일 보며 지내던 그때 그 2년간의 나날처럼 말이죠.

1988년 CD로 나온 레오나드 코헨의 ‘I am your man’을 오늘은 인터넷으로 들었어요. 생각나나요? 그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으며 손 살짝 잡고 마지막 발맞추던 때. 누가 앞설까 뒤설까 어깨 기대던 때. 살랑 흔들리던 몸과 마음, 안기고 싶은 건 서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코헨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말하곤 했지요. “날 다 가져. 뭐든지 시켜, 다 할 수 있어. 다른 사랑을 원하면, 다른 사람도 될 거야. 난 당신 남자니까.” 그러면 그댄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지요.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냥 있어. 지금 이대로가 좋아.”

이제 코헨도 어엿한 중년이 되었겠군요. 그도 첫사랑이 있었겠죠? 그나 나나 이제는 말할지 모릅니다.

누군가를 위해 처음으로 나를 버린 사랑이 바로 첫사랑이라고. 이런 말도 할 겁니다. 첫사랑이란 기쁨인 채, 슬픔인 채, 서로 품에서 잠드는 거라고. 그래서 “사랑해” 말하지 못하고 그냥 있다가, 바라만 보다가 훨훨 사라지는 거라고.

다시 멀리 코헨의 노래가 하늘로 날아가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대는 이미 내 노래가 되어 몸에 깊이 새겨져 있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그대가 문득 꿈에라도 나타나면 금방 노래를 불러야 하니까요.

‘난 지금도 당신 남자예요!’라고. 영원히 안녕. 잘 있어요. 김봉길(59) 아산티맨홍그룹 이사?시인


STAGE 6 가슴에서 쾅‘ ’ 소리가

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스물다섯 무렵. 하루는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렸다. 괜스레 싱숭생숭한 마음을 떨치고 교정 작업을 하러 지하 조판실에 내려갔다. 작업복의 남자들 일색인 곳에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앳된 여자가 나타나서일까. 그곳의 연세 지긋한 어른들은 늘 내게 친절했다. 그중 고참인 한 분이 특히 그랬다. 나이 차는 컸지만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때가 많았다. 날씨 탓이었을까. 그날은 이야기 대신 철제 책상의 맨 아래 서랍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드셨다. ‘첫사랑의 여인에게서 받은 편지’라고 했다. 모서리는 헐고 누렇게 빛이 바래 내용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엔 어림없다”며 급기야 몸져누우신 어머니로 인해 결국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결혼을 해 아들, 딸 낳고 살던 어느 날, 청계고가도로 아래서 우연히 그 여인을 마주쳤다고. 순간 가슴에서 ‘쾅’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여인과 어떻게 빵집에 들어 마주 앉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야 알았다.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아직도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

집에선 내색도 할 수 없는 자책감에 잠 못 이루면서, 그날 왜 기약도 없이 헤어졌나 후회하며 아픈 가슴을 쓸었다고 그 어른은 내게 말했다. 예전 그녀가 보낸 편지를 어렵사리 찾아내 서랍에 넣어두고 10여 년 동안 꺼내 보다보니 편지는 그 모양으로 헐고 닳았다는 것.

이야기를 들은 지 30년도 더 지난 지금, 백발이 성성할 그분은 아직도 어디선가 그 편지를 읽고 계실 것만 같다. 성진선(59) 자유기고가?번역가


STAGE 7 남편이 내게 건넨 책

내 혼수 품목 중엔 특별한 게 하나 있다. 시댁어른들에게 “젊은 처자가 이 책을 읽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시숙님에게 사랑스러운 제수로 오래 남게 한 것. 바로 일본작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를 중심으로 수많은 인물의 역경, 인내, 애증의 시간을 담은 스무 권의 대하역사 소설이다(지금은 새롭게 변역되어 책의 수량이 더 늘었다고 한다).

어느 겨울날 그는 두터운 외투주머니 속에서 따스한 군밤 봉지와 함께 이 책의 마지막 권을 건넸다. 그때 비로소 나는 그가 내게 전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스무 권의 책이 책장에 자리 잡아가는 동안 철부지 소녀는 그 책에 숨은 삶의 의미를 깨닫기에 충분한 여인으로 마음의 키를 높이고 있었다. 먹물이 한지에 스며들듯, 그에게서 한 권씩 책을 받아드는 시간 동안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찾아들었다.

누군가 내 곁에서 웃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기를 열망하던 젊은 날의 열정은 된장찌개를 끓이는 아내의 모습이 되었다. 그를 닮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여름날의 버스정류장에서 그의 퇴근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나는 변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랑은 채워 넣음이 아닌 비워가는 마음임을 알려주려 하던 그는 작별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지금도 불쑥불쑥 어느 시간의 골목에서 “안녕!” 인사하며 손을 내밀어 나를 위로할 때가 많다. 가끔씩 찾아와 먼 옛날의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는 그 사랑에게 나는 여전히 사랑을 시작하는 그날의 고운 모습, 푸르른 청춘이고 싶다. 내 생의 시간이 다 끝나 그의 영혼을 만나러 가는 날에 나는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데, 그대 역시 그 푸르른 날의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고. 황수현(63)?주부


STAGE 8 보리의 알싸한 내음과 그 소녀

단발머리에 큰 눈이 유난히 반짝이던 자그마한 소녀. ‘그 집 앞’이라는 가곡을 배우던 중학생 시절, 정말 나는 노랫말처럼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그 집 앞을 배회하곤 했다. 햇볕이 유난히 따사롭던 어느 봄날 그녀는 함께 보리를 베던 추억을 남기고 떠났다. 졸업과 함께 우리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스무 살이 훌쩍 넘은 무렵, 서울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나는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다. 용기를 내어 말을 붙였고 명동의 한 다방에서 그녀와 만날 수 있었다. 설레고 가슴이 탁탁 막히는 그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 그리고 휘경동 골목길을 또각또각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은 듯 환희를 느꼈다. 이어 두 번째 만남. 일주일 내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들떠 있던 나는 전날 저녁 갑자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첫사랑은 가슴에 품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서 나의 의식은 딱 멈춰 있었던 것이다.

나갈까, 말까 밤을 홀딱 지새우면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약속 시간을 맞았다. 다방 간판이 보이자 도저히 그녀를 만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되돌아가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는 생각에 다방으로 들어가 한구석에서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녀를 기다렸다. 이내 조용히 들어선 그녀. 혼자 자리를 지키던 그녀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일어나 문을 나섰고, 이후 그녀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첫사랑은 가슴에 품는다’는 말. 이 말은 가끔 그녀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나에게 그때의 결정은 참 잘한 것이라고 안위시킨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봄만 되면 보리의 그 알싸한 냄새와 함께 찾아오는 내 첫사랑. 예쁜 단발머리를 한 앳된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임명수(58) 창업경영아카데미 대표


STAGE 9 겨울 재회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예전에는 강릉역에서 경포로 들어가는 철길이 있었다. 그 철길을 따라 걸으며 경포대를 가자면 30~40분은 족히 걸어야 했다. 가을이면 철길을 따라 어린 아이 키만큼 자란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 코스모스가 활짝 핀 철길은 우리들의 데이트 코스였다. 아직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머슴아’와 ‘가시내’가, 앳되기 이를 데 없는 설익고 풋풋한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손을 잡고 싶어도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한 어린 연인들은 철로 위를 수평으로 걸으며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환하게 웃곤 했다.

몇 년 전 겨울에 남쪽 지방을 여행한 일이 있다. 눈이 귀한 곳인데 어쩐 일인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눈이 내렸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내리던 눈은 급기야 내 가슴속 깊숙이 들어왔다. 눈바람 때문이라는 핑계를 만들어, 살아온 세월만큼 들어찬 가슴속 수많은 방문을 하나하나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푸른 오월처럼 빛나던 그 철길이 있는 방의 문이, 이미 화석처럼 굳어버려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반백의 머리를 한 그가 나타났다. 비록 세월을 비껴가지 못해 얼굴에 주름이야 생겼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엔 그 풋풋함과 설익은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참 이상도 하지.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람 앞에 서면 어떤 숨김도 없고 흉도 없는, 자연스러운 내가 된다. 아마도 첫사랑은 가슴속 오지에서 나조차 알지 못한 맑은 샘물로 고여 있다가, 어느 날 닫혔던 문이 열리면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강물이 되는 모양이다. 조규옥(63)?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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