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26 09:48

Active Life | 플라멩코 무용가 오미경

제 안에 몇 방울쯤 집시의 피가 섞였다고 믿는 여자가 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등대’로 살아왔다는 여자. 그녀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그저 등대로 살아가라고, 한곳에 정박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답한다. 지금은 또 다른 항해를 준비할 때라고.

플라멩코 무용가 오미경 씨. 그녀는 플라멩코 불모지인 국내 몇 안 되는 플라멩코 전문가다. 본고장 스페인에서 ‘아모르 데 디오스’ 무용 과정을 이수한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 일본 등지를 오가며 하비에르 라토레, 라 타티, 알리시아 마르케스 등 정통과 모던을 넘나드는 거장들에게 직접 사사했다. 꽤나 화려한 이력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녀는 한국의 전형적인 주부로 살았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결혼생활은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그녀를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게 했다. 어쩐 일인지 이 평범한 생활이 그녀에겐 쉽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살다보니 내 자신이 점점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인생이 이대로 끝나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렇게 15년간 갈증의 시간을 보낸 오 씨가 플라멩코라는 ‘신(神)’과 조우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순간의 일이다. 그때 그녀 나이 마흔.

오미경
사진 제공 오미경

‘내 안에 집시의 피가 섞여 있구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인 그 무렵 오 씨는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왜 하필 스페인으로 길을 잡았는지는 알 수 없다. 우연히 그라나다 뒷골목의 한 허름한 클럽에 들어섰을 때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집시들의 플라멩코 무대였다.

“이전에도 몇 번 플라멩코 공연을 본 일은 있었다. 예쁜 무희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멋진 남자 무용수와 함께 추는 춤. 그 기막힌 퍼포먼스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사실 깊은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그라나다에서 본 광경은 달랐다. 낡은 무대 위 주름진 얼굴의 집시들이 해진 옷을 걸친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오 씨는 강렬한 영혼의 이끌림을 느끼고 말았다. “춤추는 집시 여인의 눈이 맨 앞자리에 앉은 내 눈과 마주쳤다. 내가 본 그 눈빛은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신내림을 받은 무녀의 눈빛과도 같았다. 그 눈빛에는 분명 한(恨)이 서려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플라멩코를 왜 영혼의 춤이라고 하는지 그때 알았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오 씨의 삶은 바뀌었다. 평소 춤추는 걸 즐기지도 않았으면서 “플라멩코를 해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그리고 5년 후 드디어 플라멩코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플라멩코를 하기 전에도 나는 늘 문화적 열망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림, 음악, 공연, 패션 등에 두루 관심을 두었다. 뮤지컬 같은 장르에 꽂혀 한동안 왕성한 호기심과 열정을 비친 적도 있다. 그래서 플라멩코도 그 정도에 그칠 줄 알았다. 취미로 잠시 하다 말 줄 알았던 거다.”

하지만 플라멩코는 달랐다. 플라멩코를 만난 오 씨의 내면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간 그녀가 쌓아놓은 욕구나 갈망이 그만큼 컸던 탓이리라. 국내의 몇몇 아카데미와 워크숍을 통해 기초를 익히고 요가나 수영으로 체력을 다졌다. 플라멩코와는 정반대의 춤이라 할 수 있는 발레를 병행하며 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배우고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는 일본, 스페인 등지를 오가며 플라멩코 거장들에게 사사했다. 유수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플라멩코에 점점 빠져들었다는 그녀. 매순간 그녀는 생각했다. ‘내 안에 집시의 피가 섞여 있구나’ 하고.

처절하고 격정적인 플라멩코 노래인 ‘칸테(cante)’를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고 그녀는 말한다. “플라멩코는 희로애락을 가장 격렬히 표출하는 춤이다.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스스로의 욕망과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던 내가 비로소 가면을 벗어 던지고 만난 춤이다. 내 안의 나를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플라멩코다.”

그런 오 씨는 이미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기량을 발휘했다. 지난 2012년에는 스페인 정상급 플라멩코 아티스트들을 직접 초청해 ‘하비에르‧알리시아 초청 공연’을 선보이며 한국에서 정통 플라멩코가 주목받는 데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한다. “10~20년 정도 췄다고 ‘좀 춘다’고 말할 수 없는 게 플라멩코다. 어쩌면 플라멩코는 육체적‧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예술 장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까지 너무나 부족한 게 많다. 지금껏 7년 정도 췄으니, 이제 시작 단계다.”

오미경
사진 제공 오미경

플라멩코로 타오르다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걸어나가는 오 씨는 주변의 시선이 조금은 불편하다. “이 나이에 마음속에 활화산을 지니고 있는 나를 한국 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이에 맞게, 점잖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그렇지만 나는 ‘나이에 맞게’라는 말이 제일 싫다. 쉰이라는 나이. 주변에선 착륙하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 지금은 또 다른 이륙을 해야 하는 나이다. 정박이 아닌 또 다른 항해 말이다.”

그녀는 ‘성장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성장을 멈춘다면 비로소 늙게 된다’는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지금 그녀의 가장 큰 목표는 국내에서 플라멩코 축제를 여는 것. 플라멩코를 통해 삶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 말이다. 국내를 비롯해 스페인, 미국, 러시아, 일본 등에서 활동하는 유수의 플라멩코 아티스트의 공연,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전문가 워크숍, 문화 강연 등으로 알차게 꾸릴 생각이다. “늦은 나이에 플라멩코를 시작한 만큼, 예술가로서 이름을 떨치겠다는 욕심은 크게 없다. 그냥 많은 대중에게 플라멩코를 널리 전하고 싶다.” 현재 플라멩코 커뮤니티 ‘소피아의 비욘드 플라멩코’를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몇 달 전 플라멩코와 함께한 몇 년간의 시간을 담아 펴낸 에세이 <플라멩코로 타오르다>의 한 페이지에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검은 옷으로 스스로 세상의 빛을 차단하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한 영혼은 우연히 플라멩코의 늪에 빠져 마법의 힘을 얻고 이제 독수리로 변신, 강한 부리와 새 깃털을 갖춘 채 수평선 너머로 비상할 준비를 합니다. 같이 날고 싶어요. 날기는커녕 걷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과 함께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