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수익은 길~게, 위험은 짧게… 오르건 떨어지건 웃는 '양다리 펀드'

"은행에 돈 넣어봐야 이자는 쥐꼬리고, 딱히 유망한 종목도 안 보이고…. 투자 DNA가 박멸된 것 같았다"던 주부 윤모(52·서울 송파구 방이동)씨는 최근 지인에게서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작년 가을 우연히 한 펀드에 가입했는데, 서너 달 만에 수익률이 7%를 기록 중이라는 것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3% 이상 떨어져, 상대 수익률이 10%에 달한다. "더 구미가 당겼던 대목은 그 펀드 종류를 '절대 수익 추구형'이라고 부른다는 점이었어요. 오를 종목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떨어질 종목을 미리 팔아서도 수익을 낸다니, 이번엔 한번 들어볼까 싶더라고요."

가격이 오를 것 같은 종목을 매수(롱·long)하고,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종목은 공매도(주식을 빌려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 결제일이 돌아오는 3일 안에 주식·채권을 매입해 대여자에게 돌려줌)하는 기법으로 운용되는 '롱숏펀드'가 윤씨를 포함한 투자가들로부터 관심 몰이를 하고 있다. 증시 등락과 큰 상관없이 꾸준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지난해 1조4000억원이 몰린 데 이어, 올 들어서도 38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하나은행이 올 초 자사 PB(프라이빗뱅커·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금융전문가) 216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8%가 "올해 가장 유망한 국내 주식형 펀드는 롱숏펀드"라고 답해, 투자처 중 1위를 차지했다. 통상 은행 이자율보다 두 배의 수익을 안겨준다는 롱숏 펀드는 어느 별에서 온 상품이길래 절대 수익 추구가 가능하다는 것인지, 숨은 위험은 없는지 알아봤다.

◇롱(매수)과 숏(매도)을 동시에 해서 위험 회피

상대적으로 저(低)평가된 주식을 사고, 고(高)평가된 주식을 파는 것이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투자 기법이었다. 예상대로 주가가 오르면 수익이 났지만, 떨어지면 손실이 났다. 예측이 쉬운 적은 없었지만, 특히 요즘처럼 3년 이상 박스권 장세가 계속될 땐 상승과 하락 양방향 모두 예측하기가 어렵다. 방향성에 대한 위험을 줄일 필요성이 전에 없이 커진 만큼, 한 펀드 안에서 롱과 숏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상품이 주목받는 것이다. 여기서 '숏'은 공매도를 말한다.

엔저 상황에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을 놓고 봤을 때, 도요타는 수익 개선이, 현대차는 상대적인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도요타를 롱(매수)하고 현대차를 숏(매도)하는 전략이다. 하나의 펀드 바구니 안에 상승을 예상하고 사들인 종목과 하락할 것 같아 미리 판 종목이 10쌍 이상 담겨 있으면 매수만 했을 때보다 손실 확률이 확 줄어든다.

'짝'을 이루는 매수·매도 종목은 같은 업종 내에서 고를 수도, 다른 업종에서 고를 수도 있다. 예컨대 같은 에너지 업종인 한전과 가스공사 주식을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영업환경 개선이 기대되는 한전은 사고 기대이익이 이미 반영됐다고 판단되는 가스공사는 공매도할 수 있다. 또 급격한 원화절상 상황을 가정할 때 대표적인 수출기업인 자동차 ETF(상장지수펀드)는 공매도하고 은행이나 소비재 ETF는 사들이는 섹터 ETF 롱숏 전략도 구사할 수 있다.

국내에선 롱숏 기법을 가미한 펀드가 2011년부터 본격 소개되기 시작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사실 1970년대부터 등장했다. 미국·룩셈부르크·아일랜드 등 전통적인 펀드 강국의 헤지펀드들이 다수 운용해왔다. 위험을 회피하는 양다리·문어다리 전략이 전문인 헤지펀드의 속성에 롱숏 전략은 그대로 들어맞는다. 금융위기 이후 이런 속성이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2009년 약 200억달러였던 롱숏펀드 운용 규모는 지난해 865억달러로 커졌다.

◇올 들어 코스피 3% 하락했지만, 롱숏펀드는 대부분 수익

롱숏펀드의 인기는 실적이 증명하고 있다. 운용 자산 규모가 가장 큰 '트러스톤 다이나믹코리아50'(1조359억원)의 1년 수익률은 11.25%를 기록 중이다. 설정일(2011년 6월) 이후 수익률은 21.9%에 달한다. 비교적 신생 상품인 '마이다스 거북이90'이나 '마이다스 거북이50'의 수익률도 설정 후 각각 2.65%와 9.43%를 기록하고 있다. 연초 후 2월 중순(19일)까지 코스피는 3.2% 하락한 반면, 대부분 롱숏펀드의 수익률은 플러스를 기록하면서, 중위험·중수익 신흥 강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은 "금융위기가 잠잠해진 2010년 말부터 지난 3년간은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찾아 헤맨 3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자문형랩에서 ELS(주가연계증권), 해외채권펀드로 순차적으로 몰려갔던 자금이 이제 롱숏펀드로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경도 넘는다

불과 2년여 만에 비슷한 성격의 국내 주식형 롱숏 상품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이제 증권사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한·중·일 3개국 종목에 80%를 투자하는 '아시아포커스 롱숏펀드'를 최근 출시했다. 한·중·일 3개국은 동시간대에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순발력 있는 롱숏 전략 구사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KB자산운용도 '한·일 롱숏펀드'를 내놨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55개 품목이 겹칠 정도로 산업 구조가 유사하고 경합 품목이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두 국가의 유사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한 종목 간 가격 상관관계를 활용해 짝을 이룰 종목군(群)을 만드는데, 파나소닉과 LG전자가 롱·숏 바스켓에 들어간다. 하나UBS는 미국·유럽 주식이 주력인 글로벌롱숏 펀드를 출시했고, 트러스톤과 신한BNP파리바 등도 조만간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공모형 해외 롱숏펀드를 내놓을 예정이다.

◇롱과 숏, 양방향 모두 안 맞으면 큰 손실도

하지만 '절대 수익 추구형'이란 달콤한 말이 매번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상승하는 경우와 하락하는 경우 양방향에 모두 다리를 걸친 만큼, 시장 리스크는 줄였지만 '회사(개별 종목) 리스크'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주어진 상황에서도 예상과 전혀 다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엔 두 배의 손해가 날 수도 있다. 안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엔저 상황을 예상하면서 도요타를 롱하고 현대차를 숏했는데, 예상치도 않게 갑작스러운 엔고가 찾아오면 두 방향 모두 틀린 두 배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종목을 잘못 찍었더라도 시장 전체가 오르면 운 좋게 묻어가는 경우도 롱숏펀드에선 기대할 수 없다. 그만큼 펀드매니저의 정확한 상황 판단, 종목 판단에 기대야 하는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국내 롱숏펀드의 수익률이 대체로 괜찮았던 이유는 뭘까? 한 전문가는 "수익률이 나쁜 펀드는 시장에서 재빨리 퇴출당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좋은 것만 남아서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