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銀총재 내정자 첫마디 "국가발전에 도움될 방법 찾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3일 신임 한국은행 총재로 이주열(62) 전(前) 한국은행 부총재를 내정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인선 배경에 대해 "한은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정통 한은(韓銀)맨으로 한국은행 업무에 누구보다 밝으며, 판단력과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감각을 갖추었으며, 합리적이고 겸손하여 조직 내 신망이 두터워 발탁했다"고 밝혔다.

이 내정자는 3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중앙은행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존립의 기반이 허물어진다"고 말했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단순히 경제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시장과의 소통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도 했다.

이 내정자는 "이 시점에서 한국은행에 요구되는 역할을 올바로 수행해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통화정책의 속도감과 예측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5년, 10년은 내다보지 못하더라도 (중앙은행은) 1년, 최소한 6개월은 내다보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경기 회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정부와의 정책 공조이다. 그는 2009년 부총재 취임 당시 "우리 경제의 자생적 회복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 진단하면서 "앞으로 한은이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경기 회복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었다. 한은 관계자는 "이 내정자는 금융 안정은 중앙은행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부와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신임 한은 총재의 무거운 짐

신임 한은 총재는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 중단에 따른 신흥국의 금융 시장 불안에 대처하고 경제를 살리면서, 가계부채 연착륙 과제도 풀어야 하는 복잡다기한 숙제를 안고 있다. 청와대도 이 내정자 인선 배경에 대해 '정통 한은맨'이라는 점과 함께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감각을 갖췄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장에선 한은이 '은둔자' 같은 행태에서 벗어나 경제활성화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김준경 KDI 원장은 "경기가 가라앉는 것을 막으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금융당국과 한은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세세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금리정책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관리 등 미시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사명이 많이 바뀌어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보다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은 정통 한은맨 출신인 이 내정자의 매파 성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날 오후 이 내정자 인선이 발표되자, 채권시장에서 지표 역할을 하는 3년 만기 국채 금리가 장중 7~8bp(1bp는 0.01%) 급등했다. 외국계 A 증권사 임원은 "청와대에서 친(親)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인사를 낙점하면 한은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시장의 실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내가 30년 '한은맨'이라 한은의 기본 임무인 인플레이션을 막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는 것 같다"면서 "내가 어떤 성향을 보일지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은 안팎에선 그가 '물가 안정'이라는 도그마에 매달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한은의 역할을 '경제 안정' 전체로 해석해 적극적 통화정책을 선호하는 인물이라 금리정책 운용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장과 소통 강화할 듯

전문가들은 신임 한은 총재의 자질 가운데 전문성과 함께 시장과의 소통을 꼽는다. 인터넷 경제매체 조선비즈가 지난 1월 경제금융 전문가 32명을 대상으로 한은 총재의 자격 요건을 물었을 때, 40%가 전문성을, 30%가 시장과의 소통 능력(중복 응답)을 꼽았다.

전문가들이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것은 전임 김중수 총재에 대한 실망감이 큰 탓이다. 김 총재는 지난해 4월 거의 모든 시장 참가자들이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예상할 때 금리를 동결했고, 바로 그다음 달에는 많은 시장 참가자가 금리 동결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금리가 내려 ‘불통(不通) 중수’란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2011년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연준 설립 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을 상세히 설명한 사례와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나를 믿어라”고 말해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운 것처럼, 신임 한은 총재도 시장과 적극적인 소통을 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