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요즘 여의도… 오를 놈보다 떨어질 놈 찾는다

'숏(short)' 투자가 증시 문화를 바꾸고 있다.

요즘 펀드매니저들의 관심사는 주가가 떨어질 만한 종목을 찾는 것에 쏠려 있다. 예전에는 주가가 오를 만한 주식을 사 주가가 오른 후 팔아 차익을 남기는 데 집중했지만, 요새는 숏(매도)할 주식도 함께 찾아 나서고 있다.

'숏'이란 주가가 내릴 것으로 생각되는 주식을 미리 빌려서 팔고, 이후 주가가 하락한 주식을 사서 되갚아 차익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공매도'이다.

최근 몇 년간 박스권(일정한 범위에서 지수가 오르내리는 것) 장세가 이어지면서 앞으로 오를 것 같은 주식의 숫자가 많지 않다 보니, 반대로 주가 하락 가능성이 큰 종목을 공매도해 수익을 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대차잔액 늘고 롱숏펀드에 뭉칫돈

숏의 인기는 대차잔액에서 드러난다. 대차잔액이란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주식을 빌린 뒤 상환하지 않은 물량을 말한다. 빌린 주식은 대체로 공매도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차잔액의 주식 숫자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공매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작년 초(2013년 1월 2일) 유가증권시장의 대차잔액은 5억5179만주였지만, 작년 7월 중순에는 9억2438만주까지 뛰었다. 현재 유가증권시장의 대차잔액은 9억249만주다(지난 2월 28일 기준).

롱숏펀드에도 꾸준히 자금이 유입 중이다. 롱숏펀드는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사고(롱), 주가가 내릴 것으로 판단되는 주식은 미리 빌려서 팔아(숏) 차익을 남기는 전략을 동시에 쓰는 펀드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롱숏펀드에는 4399억2500만원이 유입됐다. 최근 1년 동안에는 1조1308억원이 들어온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1조원이 넘는 돈이 빠져나간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숏 인기에 증권가는 변신 중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주가가 오를 만한 종목이나 업종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주로 썼지만, 최근에는 주가가 떨어질 만한 종목을 짚어내는 일도 하고 있다. 지난달 초 삼성증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에서 손실이 날 가능성이 부각되자, 이와 관련해 "삼성증권 주가 하락을 예상한 공매도 물량이 많아져 주가가 더 떨어졌다"는 애널리스트의 분석이 쏟아진 것이 대표적이다. ELS 녹인이란 기초자산인 종목이나 지수가 50~60% 이상 떨어지면서 ELS가 손실을 내는 것을 말한다.

기업에 대해 쓴소리를 담은 보고서 숫자도 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집계 결과 매도 의견을 낸 보고서는 2010년에 1건도 없었지만, 2011년과 2012년에는 1건씩 있었고, 작년에는 2건이 있었다. '비중 축소'를 권한 보고서는 2012년 1건이었지만, 작년에는 9건으로 집계됐다. '시장 중립' 의견을 낸 보고서 숫자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과거에는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는 꿈도 못 꿨다"며 "증권업계가 워낙 어렵다 보니까 매도하라는 보고서도 돈만 된다면 증권사 내부에서 다 용인해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증시 반등에 숏커버링 관심

공매도가 늘면서 증시 반등기에는 '숏커버링'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숏커버링이란 공매도를 해 놓았던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작년 4분기(10~12월) 공매도 대상이 됐던 1283개(유가증권시장, 코스닥 합계) 종목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4.9%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2.3%)보다 높았다.

이에 대해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매수로 돌아서는 등 앞으로 한국 증시가 상승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전망 때문에 숏커버링이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분석한다. 공매도를 한 경우 주가가 오르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데, 이를 막기 위해 주가가 더 오르기 전에 앞서 숏커버링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 때문에 공매도가 많았던 종목을 중심으로 최근 주가가 크게 오르는 경우가 잦았다고 설명한다. 해외 저가 수주로 작년 하반기 공매도 세력의 뭇매를 맞던 건설주가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 발표 전후로 주가가 급등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숏(short·공매도)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 만약 예상대로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을 미리 팔아 받은 돈보다 적은 돈을 들여 주식을 사서 갚을 수 있기 때문에 차익이 생긴다. 반대로 주가가 올라가면 손실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