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다섯… 다시 반짝이는 스타

누가 싫은 소릴 하면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사람 무시하지 마소잉"이라며 발끈하고 "나 일 그만두겄소"라며 초강수를 두는 가사도우미(SBS 주말드라마 '세번 결혼하는 여자')가 있다. 남자 주인공의 외할머니이자 태양그룹 맏아들의 첫 번째 신부는 죽는다는 미스터리의 열쇠를 쥔 인물(TV조선 주말드라마 '백년의 신부')이기도 하다. '백년의 신부'는 지난달 22일 첫 방송 직후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서 '별에서 온 그대'를 누르고 종합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해외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바야흐로 '신 스틸러(scene stealer·주연보다 강렬한 조연)'로 거듭난 배우 허진(65) 얘기다.

그는 왕년의 스타다. 1974년 'T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공포영화 '월녀의 한'(1980)에선 타이틀 롤까지 맡았고, 신상옥 감독이나 이순재·박근형·박원숙 등 당대 명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겸손이란 걸 몰랐던 때"라고 했다. PD나 드라마 국장과의 싸움도 다반사였다. "'셋방살이' 찍을 때는 긴 월남치마 입고 애 데리고 리어카 끌고 올라가는 장면이 너무 구질구질해서 그냥 집에 가 버렸죠."

콧대 높고 무책임했던 그녀의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곧 일이 끊겼다. 긴 공백 끝에 KBS '무인시대'(2003)에 상궁 역으로 캐스팅됐지만 "탐탁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왕년의 스탄데, 최소한 대감 부인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싶었던 거예요. 정신이 글러 먹었던 거죠."

생활고가 시작됐다. 수입이 없으니 세간을 내다 팔았고, 집을 팔았다. 2년간 전국을 떠돌며 차에서 쪽잠을 잤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왔다. 지난해 8월 수중에 딱 700원이 남았다. "살 마음이 안 나더라고요. 돈 떨어지면 그냥 굶어 죽자는 생각이었죠."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 배우 강부자였다. 손에 쥐여준 생활비 100만원보다 더 큰 건 '기회'였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김수현 작가에게 허진의 출연을 부탁한 것. 무려 주인공 어머니 역이었다. 그러나 기회는 아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김수현 작가님 앞에서 대본 리딩을 하는데 위축되더라고요. 표독스러운 역할인데, 이미 자신감이 바닥이었던 터라 망쳐버렸죠." 김수현 작가가 딱 한마디를 했다. "제가 허진씨를 너무 높게 평가했었나 봐요." 강부자가 또 한 번 동아줄을 내려줬다. 이번엔 가사도우미 역이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하자'고 마음먹었다. 결과는 대성공. "매회 대본에서 제 분량이 자꾸 늘어요. 33회 대본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있더라고요."

그가 '전화위복'이란 말을 꺼냈다. "동생들이 '언니가 밑바닥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난리도 아녜요. 제가 로망이래요." 그는 대본에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