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성형할까요?

“사진이 못 나왔네요.”
 
다른 이들이 인물 사진을 보여줄 때 이렇게 말해야 좋은 거라 여겨왔다. 실물은 사진보다 더 낫다는 칭찬이 되는 셈이니까. 요즘은 달리 말하려고 한다. 어느 날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보니 ‘이게 누군가?’ 생소하리만큼 주름이 파인 얼굴의 여자가 나타나면서부터다. 아무리 화장발, 조명발로 감춘다 해도 자신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데 ‘사진이 못 나왔네요’라는 하얀 거짓말에 더는 마음이 동할 손가. 역지사지라고, 선배들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동년배들 또한 같은 심정이리라 싶어 그냥 순간 듣기 좋은 말로 바꿨다.
 
“사진이 잘 나왔네요.”
 
일부러 지어내지 않아도 좋은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사진은 대개 미소를 머금거나 활짝 웃는 모습이 담긴 것들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면 입술을 좌우로 쫙 펴고 입꼬리는 살짝 올리게끔 ‘김치’니 ‘치즈’를 말하게 한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나면 입꼬리는 금세 내려가고 만다.
 
한일(一)자 모양으로만 머물러 있어도 좋으련만 일자의 양 끝이 아래로 휘어진 모습들을 거리에서 전철 안에서 흔히 보게 된다. 나이가 지긋할수록 더욱 휘어져서 마치 노란색의 동그란 스마일 표시에 그려진 입 모양이 거꾸로 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를 다시 스마일 모양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인상이 좋아 보일까.
 
“그렇게 하는데 드는 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얼마 전 참가했던 한 워크숍에서 ‘신 나는 리더십’을 주제로 연단에 선 강사가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이미지를 좋게, 또 어려 보이게 입꼬리의 근육을 잡아주는 소위 ‘볼꼴대 수술’ 비용이 얼마이겠느냐는 것이었다.
 
참석자들로부터 1백만 원에서 5백만 원까지 이르는 여러 답이 나왔지만, 강사는 ‘1백50만 원’이라고 했다. 어떤 기준가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쌍꺼풀이니 가슴확대, 양악, 주름제거 등의 성형은 들어봤어도 처음 듣는 수술이었다. 하기야 우리나라 성형시장 통계치로 미뤄볼 때 들어보지 못한 종목인들 좀 많을까.
 
인구대비 성형 건수 세계 1위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의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형시장 규모는 5조 원으로 세계시장의 4분의 1에 달한다고 한다. 성형 건수는 65만 건으로 세계 7위라지만 인구대비로는 전 세계 1위라니 성형의 가짓수도 엄청나게 많을 게 분명하다. 눈 하나만 해도 쌍꺼풀 수술, 매몰법, 눈매교정술, 앞트임, 뒤트임 등이 얼추 꼽히는 마당이잖은가.
 
그만큼 성형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져서 연예인들 가운데는 성형 부위를 스스럼없이 밝히기도 한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도 연초 회춘 성형을 위해 방한했다시피 어르신들의 성형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추세다.

게다가 청춘들이 입학이나 사회진출 등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앞둔 시기야말로 성형 ‘대목’으로 여겨진 지 오래다. 장삿속도 춤을 춰서 ‘사각 턱뼈각 단 30분 만에 제거 다음 날 출근 가능’ ‘팔자주름 한번 치료로 90살까지’ ‘금실 리프팅효과 8~12년 지속’ 같은 과장광고가 판을 친다.
 
성형수술 후에는 색조화장에다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 사진 찍는 각도까지 달리한 얼굴광고로 눈을 속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말 이렇게 효과를 크게 부풀린 광고들에 시정명령을 내렸다지만 글쎄다, 과연 바로잡아질까. 성형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의사면허만 있으면 의료법상 미용성형 시술자격을 주는데다, 사람은 보통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만 보고 들으려 하지 않나. 
 
빨대 에어로빅

흔하디흔한 귓불 뚫기 마저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성형수술이란 여전히 딴 세상의 이야기일 뿐. 그런데 워크숍의 강사는 괜히 수술비용을 물은 게 아니었다. 수술 없이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애드벌룬용 질문이었던지라 이어지는 얘기에 귀가 쫑긋하게 만들었다.
 
워크숍에 참석차 현관을 나서던 날 아침, 나를 배웅하며 '오늘따라 입가에 팔자주름이 눈에 띈다'고 말한 아들에게 눈을 흘겼던 참이기도 했다. 강사가 시연까지 해 보이며 소개한 비법이란 숨쉬기 운동에 다름 아니었다. 빨대를 입에 물고 이를 통해 볼이 쏙 들어가도록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후 다시 볼을 부풀려서 내쉰다는 일명 ‘빨대 에어로빅’ 운동이다.
 
빨대를 통한 복식호흡으로 얼굴 근육을 단련해 처지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 다양한 방법이 나와 있던데, 노안까지 방지해준다지만 적어도 늦춰주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매일 단련한다면 한순간의 수술 못잖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설혹 수술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효과가 덜하다 할지라도 연륜의 자연스러움이 더해지는 것이라 여기면 그뿐이다. 어쩌면 빨대조차 불필요할지 모른다. 시원스럽게 한번 웃는 것만으로도 얼굴 구석구석의 근육이 이완되면서 단련된다지 않는가. 웃음이야말로 수술 없는 최고의 성형 방책일 수도 있을진대, 어디 웃을 일이 매일 있기나 해야 말이지.
 
새해 첫날, 집 가까운 청계산 자락으로 해맞이에 나섰다. 날이 포근해서인지 연로하신 어르신들도 여럿 뵈었다. 스스럼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건넸더니 꾹 다물어 내려가 있던 입꼬리가 일순간 확 올라가는 모습들이셨다. 하시라도 웃을 일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그분들만이 아니다.
 
사실 우린 누구나 웃고 싶고, 웃을 준비가 되어있기도 하다. 누군가 그 실마리를 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주는 이도 받는 이 못잖게 입꼬리가 올라가게 되니, 웃을 일을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제공자가 되어보는 건 어떠할지. 그 순간 얼굴 에어로빅 또한 절로 이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