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는 日本도 분명 존재… 비난만 말고 비판을 해야"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으로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다뤘던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래서는 안 된다"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상회담은커녕 실무 만남조차 갖지 못하는 최악의 한·일 관계에 대한 탄식이었다. 한국 근대사 연구자인 정 교수는 최근 광복 이후 한·일 관계사를 정리한 '주제와 쟁점으로 읽는 20세기 한일관계사'(역사비평사)를 냈다. 정 교수는 4일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역사 인식 문제로 대립하는데 역사학자로서 논쟁의 기반이 되는 객관적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원인이 뭔가.

"동아시아 전체 질서가 급변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은 1894년 청일전쟁 이후 반(半)식민지 국가에서 지금은 GDP(국내총생산) 규모 세계 2위 나라가 됐다. 한국도 크게 성장했다. 과거엔 고래 싸움에 '새우' 처지였지만 지금은 '돌고래' 정도는 된다. 통일이 되면 '밍크 고래' 수준이 될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답보 상태였다. 동아시아 질서가 뒤바뀌면서 각 나라가 적응하지 못하고 각각 내셔널리즘을 동원하면서 부딪히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주변 환경 탓이라는 말인가.

"반드시 이야기해야 할 것은 일본이 제대로 적응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을 여전히 한 수 아래로 보고, 중국을 위협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150년간 지배해 온 국제질서가 바뀌는 것인데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대립 구도로만 보려고 하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반복해서 침략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 간에 한·일 병합의 성격에 대한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원인이다. 한국은 병합조약이 원래부터 '불법·무효·강제'라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병합 당시에는 '합법·유효·합의'라고 한다. 일본은 그동안 우리 입장에 수렴해오는 과정이었다. 1965년 한·일협정 때는 '병합은 정당하다'고까지 주장했지만 이젠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했다. 2010년 간 나오토 총리는 담화를 통해 '한국인의 의사에 반(反)하여'라는 표현을 했다. '강점'이라는 인식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다른 얘기를 하니까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역사학자로서 역사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에 '사죄했으면 지켜야지, 왜 딴소리냐'고 비판하는 것과 '일본은 하나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다르다. 일본의 노력을 인정하고, 이런 흐름이 세를 확대할 수 있도록 북돋아줘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70년 가까이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인권·평화를 공유해 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면서 기억의 편중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중·고교 교과서에서 해방 이전 한·일 관계사 서술은 50쪽에 달하지만, 광복 이후는 한 페이지도 안 된다. 이건 비정상이다."

―한·일 관계 해법은.

"양국 정부와 기업이 공동 출연하는 '한·일 미래재단'을 만들어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모든 현안에 대해 연구도 하고 배상 문제 등도 포괄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독일이 '기억·책임·미래재단'을 만들어 운영한 선례도 있다. 내년이 한·일 협정 50년이다. 통일 대비 등 우리 국익을 위해서도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