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價 70%' 韓牛먹는 정육식당… 마장동 옛 명성 되찾는다

지난 3일 저녁 서울 성동구 마장동 마장축산물시장 거리는 퇴근 후 소고기를 먹으러 온 넥타이 군단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북적였다. 붉은색 전등을 켜고 일렬로 도열한 정육점 진열장에는 선홍빛 살결 사이로 마블링이 가지런히 박힌 한우가 먹음직스럽게 손질돼 있었다. 특등급(1++) 등심 가격은 100g당 8000원 정도. 1층 시장에서 양손 가득 고기를 산 이들은 곧장 3층에 있는 정육식당 '고기 익는 마을'로 향했다. 마장동 축산시장 정육점 31곳이 연합해 만든 이 '마을기업'은 오랜 침체에 빠져 있던 이 축산물시장을 '주야성시(晝夜成市)'로 만든 1등 공신이다.

'고기 익는 마을'은 1인당 상차림비 4000원을 받고 파채 등 밑반찬들과 불판 등을 제공한다. 공깃밥 1000원, 찌개 2000원, 소주 3000원 등이다. 이를 모두 계산해도 특등급(1++) 한우를 서울 강남 등의 고깃집보다 30% 이상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차돌박이·처녑 등 서비스 고기도 푸짐하게 제공돼 평일에도 예약을 해야 할 만큼 인기가 많다. 강남구 삼성동의 벤처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는 박세환(34)씨는 "강남에서 한우로 회식하려면 1인분에 최소 8만원 이상 각오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팀원 8명이 40만원이면 한우를 배불리 먹는다"고 했다. 평일에는 200명, 주말에는 300명의 손님이 '고기 익는 마을'을 찾는다.

수도권 축산물 유통의 70%를 담당하는 마장축산물시장은 1963년 종로구 숭인동에 있던 도축장이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형성됐다. 1988년 도시 개발로 아파트와 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도축장은 가락동으로 옮겼지만 축산물시장은 그대로 남았고, 현재 11만6150㎡의 면적에 2500여개 점포가 들어서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마장동 개는 뼈다귀 대신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육류 부산물을 세척·가공하면서 발생하는 특유의 비린내와 위생 문제로 점차 외면받더니 인근에 대형마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핵가족화와 식생활 변화로 고기 수요가 크게 줄어든 것도 영향을 끼쳤다. 2003년 26억원을 들여 시장 천장을 터널형 캐노피로 바꾸는 등 개선 작업을 했지만 옛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인들은 2011년부터 활로 모색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육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예전에는 꼬리나 사골이 많이 팔렸다면, 요즘은 등심·채끝 등 구워 먹는 고기가 대세였다.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정육식당 도입을 검토했고, 정육식당이 모여 있는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한우마을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 '고기 익는 마을' 창립 멤버인 고기복(51)씨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싸게 사서 근처 식당에서 구워 먹는 방식을 보고 '이게 우리 살길이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그해 2월 성동구청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개점을 준비했고, 8월에 190㎡ 매장에 120석 규모로 1호점을 열었다. 별다른 홍보는 없었지만 소문이 금세 퍼져 한 달 만에 연일 만석이 됐다.

'고기 익는 마을' 회원 가게들이 매출을 늘려가자 주변 상인들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그 결과 2011년 6개 업소로 시작한 이 마을기업은 2013년 31개 회원 업소로 발전했고, 매출액도 2011년 9125만원에서 작년 5억1279만원으로 6배 가까이 늘었다. '고기 익는 마을'을 찾은 방문객 수는 2011년 1만7000명에서 2013년 5만5000명으로 늘었다. 작년 11월에는 2호점을 열었다. 마을기업의 수익은 조합이 관리하며 설비 재투자 및 일자리 창출에 쓴다. '고기 익는 마을' 회원 업주들은 원산지 표시·정량제·정가제·디자인 등을 엄격하게 지킨다.

되찾은 활기는 마장축산물시장의 세대교체까지 이뤘다.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최정임(여·60)씨는 "예전엔 죄다 노인밖에 없었는데, 장사가 잘되니 20~30대 젊은이들이 가게를 많이 차리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홍보를 한다"며 "덕분에 분위기가 환해져 젊은 직장인들이나 연인들이 부담없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월 다하누촌도 수도권 진출… 식당 3곳] 마장동이 벤치마킹한 명소

축산 도매업주가 직접 소비자와 만나 4~5단계의 유통 과정을 생략하는 '고기 직거래'가 유행하면서 '값싸고 질 좋은' 한우를 제공하는 정육식당이 인기다.

서울 마장동 '고기 익는 마을'의 벤치마킹 모델이 된 강원 영월군 한우 관광마을 '다하누촌'은 연간 100만명의 식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떠올랐다.

2007년 출범 당시 1개 정육점과 4개 식당으로 구성된 단출한 규모였지만, 특등급 한우를 미국산 소고기보다 저렴한 가격에 맛본 관광객들이 소문을 내면서, 지금은 정육점 11곳과 식당 33곳이 들어선 한우 테마관광지로 성장했다.

이 같은 호응에 힘입어 다하누촌 정육식당은 수도권까지 상륙했다. 현재 경기 판교점·동탄점·성남 수진점 등이 문을 열어 일일 평균 방문객 200여명을 기록하고 있다. 매장에서 고기와 야채, 숯 등 바비큐 용품 일체를 판매하며 이를 구입해 매장 앞 야외 바비큐장에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다.

다하누 최계경 대표는 "지역 정육점도 참여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라며 "가족 외식, 동호회 모임, 직장인 회식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기업

지역에 산재한 각종 특화자원을 활용해 안정적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 단위 기업. 주민 5인 이상이 출자에 참여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 및 안전행정부가 사업계획서를 검토해 최장 2년간 지원금을 준다. 전국에 1200여개의 마을기업이 등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