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인사이드] 公기업 빚줄이기에… 회사채·國債 덩달아 오른다

빚더미 공기업들이 강력한 부채 구조조정에 나서자, 채권시장에 파장이 일고 있다. 주요 공기업들이 올해 채권 순발행 물량을 대폭 줄이자, 공기업 채권은 물론 우량등급(AAA등급) 기업 회사채까지 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채권을 사려는 수요는 변화가 없는데 갑자기 공기업 채권 물량이 줄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 외국계 채권운용사 임원은 "공기업들의 채권 발행 축소로 우량 회사채에 수요가 몰리면서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 발행 채권 절반 이하로 급감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전체 공기업 부채의 80% 이상은 12개 공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토지주택공사(LH공사), 한국전력, 가스공사, 도로공사, 석유공사,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 철도시설공단, 장학재단, 예금보험공사 등이다. 이 공기업들의 빚은 2012년 말 기준으로 412조3000억원에 달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공기업들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요구했을 정도다.

대통령까지 나서 빚을 줄이라고 압박하자 이 공기업들은 올해 순채권 발행 물량을 작년의 절반 이하로 줄였다. 채권 순발행이란 새로 발행하는 채권 금액에서 만기가 돌아와 갚는 채권 금액을 뺀 규모로, 채권을 찍어서 순수하게 새로 내는 빚의 규모를 의미한다.

본지가 삼성증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부채가 많은 12개 공기업의 채권 순발행은 작년 13조9720억원에서 올해 5조8000억원으로 급감할 전망이다. 지난 4년간 공기업 채권 순발행은 10조원대 중반~30조원에 달했는데 처음 10조원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기관별로 보면 LH공사는 올해 채권 순발행이 0원이고, 석유공사와 예금보험공사는 순발행이 마이너스이다. 순발행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새로 발행하는 채권보다 갚는 채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최종원 삼성증권 책임연구원은 "공기업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채권 발행부터 줄이고 있다"며 "향후 3~4년간 공사 채권 발행 시장 자체가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귀해진 공기업 채권, 우량 회사채까지 반사이득

시장에 물건을 살 사람은 그대로인데 물량이 급감하면 값이 오르기 마련이다. 작년 12월 초 3.3% 수준이었던 3년 만기 특수채권(공기업이나 특별법에 근거를 가진 회사가 발행한 채권) 금리는 1월 초 3.2%에서 2월 초엔 3.1%로 떨어지더니 지난달 28일에는 3.04%에 거래를 마쳤다. 금리는 채권값과 반대로 움직이니, 금리가 내린 만큼 채권값이 올랐다는 얘기다. 공기업 채권이 줄어든 여파는 회사채와 국채 시장에까지 미치고 있다. 정부가 지급을 보장하는 공기업 채권을 대신할 만한 채권은 만기가 같은 우량 회사채나 만기가 10년 이상인 정부 국채 정도다. 올해 1월의 AAA등급 회사채 발행 물량은 1조548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7000억원의 2배가 넘었다. 하지만 발행 물량이 급증해 채권값이 하락해야 하는데도, 우량 회사채 금리는 오히려 떨어졌다(채권값 상승). 3년 만기 AAA등급 회사채는 1월 초 금리가 3.3%였는데, 2월 초에는 3.2% 이하로 떨어졌고 발행 물량이 없었던 2월 말에는 금리가 더욱 떨어져 지난달 28일 기준 3.12%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최근 들어서는 우량 회사채 금리가 너무 떨어진 까닭에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기관투자자들도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양적 완화 축소라는 변수에도,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떨어지는 것은 이런 영향 때문이다. 양적 완화 축소는 경기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온 조치여서 장기 국채 금리를 올리는(채권값 하락) 요인이지만, 이와 반대로 움직이는 셈이다.

채권시장에서는 공사채 발행 축소의 파급효과가 채권시장을 왜곡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증권사 채권담당 임원은 "공기업 개혁은 좋은 취지지만 그 충격이 다른 곳으로 튀어선 안 된다"며 "금융 당국이 손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