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겨울 취떡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누군가를 위해 춤을 추는 것처럼, 어찌 보면 조신스럽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눈 내리는 날은, 추억 속에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한꺼번에 찾아드니 커피가 제격이지 싶다.

커피 한 잔을 타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부리나케 뛰어 나가 현관문을 여니, 엊그제 기계를 쓰지 않고 떡메로 쳐서 취떡을 만드는 할머니를 어렵게 알게 되어 주문한 취떡이 택배로 왔다.

택배 상자를 뜯으니 삽 십 센티 길이로 잘려 차곡차곡 쌓인 취떡에서 고향 향기가 물씬 풍긴다. 쑥인절미처럼 생긴 떡이, 미쳐 다 쳐지지 않아 군데군데 쌀알이 군데군데 툭 튀어나온 것이 영락없는 그때 그 취떡이다. 겨울이라 굳어진 떡을 얼른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니 바람 주머니가 봉긋 솟아오르고, 어렸을 때처럼 그 바람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툭툭 터트리니 취향이 방안 가득 퍼진다.

고향을 떠나오기까지 겨울이면 늘 취떡이 곁에 있었다. 눈 오고 찬바람 부는 날 화롯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석쇠를 올려놓고 취떡을 올려놓고 김이 모락모락 나다가 구수한 취향기가 방안 가득 퍼질 때쯤이면 손에 들고 먹기 시작하는데 화롯불에 구웠으니 뜨거운 건 당연지사.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뜨거운 감자 만지듯 옮겨가며 호호 불며 먹던 떡이, 세월을 잘 만난 덕에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실 이 취떡은, 지금도 강원도 사람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는 있되 먹어 보지 못한 떡이다. 우리나라 명절에는 설날과 추석이 대표적인 명절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는 분명 음력 5월 5일 단오라는 명절이 나오고, 그 단오 명절에는 수리취떡을 해 먹었다고 되어 있다.

그 옛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떡에다 둥근 수레바퀴의 모양을 찍었다고 전해져 차륜병(車輪餠)이라고 불렀다 하니 아마도 전국적으로 해 먹었던 모양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강원도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떡이다.

취떡은 야생화인 수리취로 만든다. 수리취란 우리가 흔하게 보는 국화과의 다년생 식물이다. 고향에서는 떡취나 개취로 많이 불리는 산비탈에 사는 들꽃이다. 햇빛이 잘 드는 양지쪽이나 들판에 많이 사는데, 키가 크고 따라서 잎이 크고 보라색 꽃이 핀다. 꽃은 9~ 10월경에 피는데 가시가 달려있으며, 꽃이 지고 나서도 길쭉한 씨앗 끝에 뾰족한 가시를 달고 있어 지나가는 나그네의 바짓가랑이에 달라붙기도 하고, 손등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보통 이 수리취로는 인절미와 절편을 만든다. 그러나 간혹 바람떡을 만들기도 하는데. 속에 달콤한 팥소를 넣으니 한 번 먹게 되면 그 향이 얼마나 진한지 오랫동안 그 맛을 기억하게 한다. 그까짓 가시에 찔리며 나물을 채취하는 수고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이 취바람떡을 먹어 보지 못했다. 지금도 단지 머릿속으로 가슴으로만 그 맛 그 향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 올겨울엔 맘껏 고향 속에 빠져 살게 되었다. 배달되어 온 취떡을 냉동고에 차곡차곡 넣어 놓고, 집식구들만 먹일 게 아니라, 고향 친구들을 한 번 불러야겠다. 화로가 없으면 어떠랴. 프라이팬에다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취떡을 노릇노릇하게 구워내어 취향이 방안 가득 퍼지면, 고향 얘기를 실컷 해야겠다. 겨울밤, 문풍지 울려대던 솔바람 소리, 무릎까지 푹푹 빠지던 눈 위에 눈부시게 빛나던 겨울 달빛, 삼 십 촉 백열등 가로등 사이로 한없이 내리던 눈 이야기를 겨울밤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