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연봉·가족관계 안 밝혀도 신용카드 발급된다

정부가 1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금융 분야 개인정보 유출 재발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소비자들의 금융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대책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 연말까지 시행을 완료할 계획이다. 대책 내용은 1억400만건의 신용정보가 유출된 카드사뿐 아니라 은행, 보험 등 전 금융권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금융사와 첫 거래를 할 때부터 계약을 해지할 때까지 전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해,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면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따른다. 내년 1월 승용차 구입을 위해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으려는 김 대리의 사례를 통해 대책 내용을 풀이했다.

①첫 금융거래 시 수집 정보 10개 이내로 제한

김 대리는 자동차 구입 시 2%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카드를 만들기 위해 한 카드사 센터를 찾았다. 신청서를 받아든 순간 이렇게 페이지 수가 많았나란 생각부터 든다. 예전에는 알 수 없는 얘기들이 조그만 글씨로 빽빽하게 적혀 있어서 신청서 페이지 수가 얼마 안 됐는데, 글자 크기가 커지고 줄 간격이 넓어지면서 신청서 페이지 수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적을 것은 별로 없다. 이름, 주소, 휴대폰 번호, 직업군 등 10가지만 적으면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결혼을 했는지, 직장이름, 연봉, 가족관계 등 50가지 넘게 물어봤었는데 대폭 간소화된 것이다. 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정부가 금융거래를 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만 수집하라고 했기 때문"이란 답이 돌아온다.

특히 신청서에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칸이 따로 없다. 대신 직원은 카드 결제기 모양의 단말기를 내민다. 직접 주민번호를 입력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입력된 번호는 카드사 서버로 즉시 전송되고, 직원은 내 주민번호를 보지 못한다.

그러면서 직원은 한마디 더 붙인다. "앞으로 다시는 고객님 주민번호를 물어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카드 이용액 하나 확인할 때도 주민번호를 요구하던 카드사가 정말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고객님 주민번호는 암호화돼서 보관되고요. 앞으로 휴대폰 번호 같은 걸로 신원 확인을 해서 각종 업무를 처리해 드릴 겁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②원하는 곳 골라서 정보 제공

뒷장을 넘기니 '선택 동의사항'이란 면이 나온다. 직원은 기재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적으라고 했다. 직원은 "이 카드는 배우자 생일에 사용하면 포인트를 두 배 쌓아주는데 혹시 결혼을 했으면서 혜택을 받고 싶다면 배우자 생일을 기재하라"고 안내했다. 고심 끝에 김 대리는 아내 생일을 적었다. 금융당국은 정보 수집 목적과 제공 시 혜택을 알린 뒤 고객이 동의하면 해당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직접 적을 것은 별로 없는데 체크할 곳은 엄청 많아졌다. 내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회사 이름을 골라 일일이 동의 표시를 해야 했다. 그래서 신청서가 두꺼워진 것이다.

"자동차 구입 할인, 영화 할인, 쇼핑 할인 등을 받으려면 자동차 회사나 백화점 같은 제휴 사업자들이 고객님이 누구인지 확인을 할 수 있어야 해요. 받고 싶은 할인 혜택에 따라 연관된 업체 이름에 동의 표시를 하시면 됩니다."

극장을 거의 가지 않는 김 대리는 고심 끝에 자동차 업체, 대형 마트, 백화점 등 10곳 정도 업체에 대한 정보 제공 동의를 했다. 김 대리는 세상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제삼자 정보 제공에 동의한다'는 난에 동의를 하면 수백 곳에 내 정보가 넘어가면서 누가 얼마나 내 정보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원하는 곳에만 넘길 수 있게 됐다.

③정보제공 동의 철회 가능

김 대리는 카드를 새로 만든 후 한 보험회사로부터 보험 가입 권유 전화를 받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카드사로 전화해 내 정보가 불법 활용되는 것은 아닌지 문의했다. '본인정보 이용·제공 현황 조회 요청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러자 내 정보가 어디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안내하는 이메일이 날아왔다.

여기서 김 대리는 자동차 보험료 할인을 받기 위해 해당 보험사에 대한 정보 제공에 동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대리는 즉시 ‘정보제공 동의 철회권’과 ‘연락중지 청구권’을 행사했다. 해당 보험사에 대한 정보 제공을 취소한 뒤, 정부가 2014년 6월 구축한 ‘수신 거부 의사’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보험사로부터의 영업 목적 연락을 차단한 것이다.

이런 조치를 취하고도 김 대리는 불안했다. 그래서 신용정보회사에 연락해 ‘본인정보 조회중지 요청권’을 신청했다. 하루 동안 누구도 내 정보를 조회할 수 없도록 막는 제도이다. 그러면 누군가 내 정보를 알고 있어도 내 명의로 대출을 받거나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김 대리는 요청권을 행사한 하루 시간을 이용해 혹시 나 모르게 만들어진 계좌나 카드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만일 금융사에서 개인 신용 정보가 유출될 경우 해당 금융사는 정보 유출만으로 최고 50억원의 과징금을 내야 하고, 이를 영업에 불법 활용까지 했을 경우 관련 매출액의 최고 3%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④정보 보호 요청하면 즉시 파기

김 대리는 카드 발급 이후 마케팅 목적의 문자메시지가 늘지 않아 만족했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또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영업할 때는 내 정보를 어떻게 취득했는지 알려야 하고, 그만 전화하라는 요청을 하면 ‘연락금지’로 등록돼 다시는 연락할 수 없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