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그 답, 인터넷에는 없습니다"

문학평론가이자 문화운동가로 활동해온 도정일(73·사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이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문학동네) 등 2권을 펴냈다.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신문·잡지 등에 기고한 글을 묶었다.

그는 2001년 '책읽는세상만들기국민운동'을 일으켜 전국 11개 도시에 어린이 전문 '기적의 도서관'을 건립하는 등 독서운동을 벌였다. 2006년 대학에서 퇴임했지만 2010년 대학 교양 교육을 위해 설립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으로 복귀해 인문학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7일 경희대 학장실에서 만난 그는 "우리 사회에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있지만 정작 대학에서의 인문 교육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며 "대학 교양 교육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 교육 현장을 "위기"라며, "학생들의 독서력과 지적·정서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중등교육 방식과 디지털 매체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대학 교양 교육은 백화점 문화센터 꽃꽂이 강좌같이 장식성 액세서리 같은 것, 본격적 공부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보는 오해가 퍼져 있다. 하지만 교양은 단순 지식의 집적이나 잡학을 넘어 기존의 진리· 주장 배후에 숨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는 능력이다."

경희대에서 3년 동안 새로운 교양 교육 방식을 적용해 온 그는 "신입생들은 처음에 고전 읽고 글 쓰고 토론하는 과정을 어렵게 여기지만, 1~2년 지나면 어휘와 글쓰기 능력,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학의 위축과 관련, "젊은 작가들은 재미와 가벼움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매체 환경이 바뀌어도 탄탄한 이야기 구성 능력이나 인간과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 등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도 대학장은 우리 사회의 '인문학·힐링 열풍'에 대해서는 "돈이 유일한 기준이 되는 가치 전도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 강박증'이란 말이 있다. 행복 추구가 불행·고통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면, 그 목표는 달성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고통의 기원이 된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법을 열심히 찾아 헤매는 사회는 오히려 절망의 사회다. 인문학이 정신과 의사처럼 병세를 진단해 약을 처방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인터넷에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런 종류의 질문에 응답하도록 돕는 게 인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