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축구 위해… 4부리그 골키퍼로 서다

"한국에 축구가 클래식(1부)과 챌린지(2부)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내셔널(3부·실업)과 챌린저스(4부·아마추어) 리그도 우리 축구의 소중한 밑거름입니다."

올해 나이 쉰둘인 전(前) 국가대표 골키퍼 최인영이 현역 선수로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지난달 4부 리그인 '2014 챌린저스' 명단에 선수로 등록했다. 그는 고양시민축구단의 플레잉 코치(코치 겸 선수)로 활동한다. 연봉은 없다. '한국 축구와 젊은 체육인을 위한 재능 기부'라며 봉급을 사양했다.

최인영은 1주일에 5번, 3시간씩 선수들과 훈련한다. "팀에 골키퍼가 두 명인데 한 명은 정말 경험이 없어요. 주전이 부상 입거나 퇴장당하면 큰일이죠. 저도 현역 시절의 60%는 기량을 낼 수 있을 겁니다. 나머지 40%는 선수 경험과 지도자 수업에서 얻은 지휘력으로 보충해야죠."

그는 국가대표 골키퍼 계보의 일원이다. 1983년부터 11년간 A매치 50경기에 출전해 40실점만 허용했다. K리그에서도 1983년 시작해 1996년 은퇴까지 176경기 174실점으로 '아시아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은퇴 후엔 울산 현대, 경일대, 전북 현대모터스에서 골키퍼 코치를 맡았다.

2013 시즌이 끝난 후 전북을 떠나 경기도 일산 집으로 돌아왔다. "새 일을 찾는 동안 고향(파주)에서 유소년을 가르쳐 볼까 했죠." 마침 김진옥(前 할렐루야 선수)씨가 옆 동네 고양시에서 시민축구단 감독을 맡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곧장 찾아갔다. 구단에는 등록금이 부담돼 휴학한 대학 선수 출신도 많았다. 하지만 구단은 돈이 턱없이 모자랐다. "고양시에는 2부 리그 팀인 고양 Hi FC도 있어요. 팀이 하나인 지자체에 비하면 20~30%밖에 지원하지 못해요." 그래서 선수 대부분이 마트·PC방·헬스장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와 축구용품비를 대고 있었다.

필드 코치도 모자란 판에 골키퍼 코치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최씨는 "괜찮다면 내가 골키퍼를 가르쳐도 되겠느냐"고 제의했다. 골키퍼가 부실해 작년 3승 2무 20패에 무려 40점이 넘는 골득실 차를 내며 18팀 가운데 17위를 했던 참이다. 구단은 "감사하다"며 최씨를 반겼다. 그는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A급 지도자 자격증을 받았고, 브라질과 영국으로 지도자 연수도 다녀온 전문 코치다. "선수들이 다들 '대박'이라며 좋아하더군요. 특히 골키퍼 박형만 선수가 기뻐했어요. 원래는 스페인어 전공 대학생인데 축구가 좋아 휴학하고 시민구단에 온 선수죠. 그 친구가 프로들 따라잡겠다며 1시간씩 일찍 나와 훈련하길래, 저도 일찍 나와 과외해주고 있어요."

최인영은 수·토·일요일에는 사회축구회에 나가 뛴다. "저 혼자 이런다고 풀뿌리 축구가 살아날 순 없어요. 그래서 축구회 3군데에 나가 '4부 리그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해요." 그는 "한국도 영국 같은 유럽 나라들처럼 하위 리그팀들도 주민들과 어울리며 번성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토대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길러지는 거죠. 더 많이 관심 가져 주세요. 젊은 선수들이 교통비 정도는 걱정 없이 축구 할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