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절대 버리지 마세요, SOS 하면 길이 생깁니다

"처음 만났을 땐 넋이 반쯤 나갔었는데, 이젠 '열심히 살겠다'고 하시네요. 이분처럼 힘들 땐 혼자 고민하다 포기하지 말고 국가, 사회단체 그리고 교회도 있으니까 도움을 청하면 길이 생깁니다."

지난 12일 서울 중계동 일명 '백사마을' 중턱,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에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장 조현삼(55·서울광염교회) 목사가 이성철(48)씨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집은 지난해 12월 중순 새벽에 누전으로 불이 났다. 이씨와 어머니, 아들·딸 등 네 가족이 겨우 몸만 피했다.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온 이씨의 호주머니에 남은 돈은 단 7만원. 가족이 몸을 누일 곳이 없었고, 고등학생 딸은 학교도 못 갔다. 절망적인 이틀이 흘렀다. 이씨는 "그 사이 한강까지 갔다가 왔다"고 했다.

위기의 순간 'SOS 릴레이'가 시작됐다. 이씨로부터 다급한 사정을 전해 들은 구청 사회복지사가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SOS뱅크'에 SOS를 친 것. 'SOS뱅크'는 서울광염교회가 위치한 노원구를 비롯해 도봉구와 의정부 지역의 불우 이웃을 위해 100만원까지 '무이자, 무독촉'으로 지원해주는 긴급 부조 시스템이다. 해가 진 저녁 현장을 찾아 이씨의 사정을 들은 조 목사는 '100만원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교회의 또 다른 구호 프로그램인 '소망의 집'으로 전환해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망의 집'은 500만~1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지원한다. 인근을 뒤져 찾아낸 빌라 반지하 집의 보증금 1000만원 중 절반은 한 복지재단이 지원하기로 했다. 그날 밤 새집에 들어간 이씨는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고 했다.

조현삼 목사는 '119 목사'로 불린다. 재난이나 어려운 이웃이 생기면 즉시 달려가 돕기 때문이다. 국내뿐 아니라 이란·아이티·일본·필리핀·에티오피아·캄보디아까지 태풍·지진·해일 피해 현장엔 그가 있었다.

조 목사가 어려운 이웃 돕기에 나선 것은 상계동에 교회를 개척한 1992년부터였다. "그해 7월 맥추감사절(보리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 헌금으로 쌀을 사서 교인들과 함께 달동네 분들에게 드린 게 시작이죠. 받는 분들이 너무도 고마워하셔서 교인들이 오히려 감격했지요." 청소년기에 혹독한 가난을 겪은 그는 "특히 잘 곳, 먹을 것, 학비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이후 교회 예산의 3분의 1 이상은 반드시 구제·선교·장학사업에 쓴다는 원칙을 정하고 '사랑의 집' '소망의 집' '사랑의 쌀은행' '나눔마켓' 등 프로그램을 펼쳤다.

'SOS뱅크'는 2005년 한 장애인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것을 계기로 재미교포가 보내준 5000만원에 교회가 5000만원을 보태 1억원의 기금으로 탄생했다. 1만원, 5만원 등 십시일반 개인들의 '예금'도 큰 힘이다. 사회복지사의 추천을 받아 검증을 거쳐 꼭 필요한 가정에 집세·이사비·병원비 등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170여 건에 1억6000여만원이 지급됐다. 명칭은 '은행'이지만 사실상 무상지원이다 보니 잔고는 12일 현재 300만원 남짓. 하지만 조 목사는 태연했다. "비우면 늘 하나님이 채워 주신다. 꼭 필요한 것은 언제나 이뤄 주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13일 조 목사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오늘 SOS뱅크로 7000달러가 날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