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55세 신인가수

1990년 어느 날 해 질 녘, 서른한 살 강승원이 집에서 담배를 물고 기타를 퉁기고 있었다. 무심히 그가 흥얼거렸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그렇게 튀어나온 네 마디로 시작한 노래가 '서른 즈음에'였다. 그는 "그렇게 노래가 써지는 건 대단한 횡재이고 이른바 '계 탄 노래'"라고 했다. 그 노래는 그러나 김광석이 불렀고, 강승원은 작곡가로만 남았다.

서른 즈음에 '서른 즈음에'를 썼던 강승원이 첫 번째 음반을 내놓는다. 속절없이 55세가 되었다. "겁이 많아서, 노래라는 게 속마음을 들키는 건데 자신 없고 창피해서" 데뷔를 미뤘다는 그가 용기를 냈다. 지난주 발표한 첫 곡은 그가 마흔 즈음에 썼던 노래 '나는 지금'이다.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나이 먹을수록 가사가 자꾸 무거워져서 걱정"이라고 했다.

고교 때부터 작곡을 한 강승원은 1992년 처음 방송된 KBS 1TV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음악감독으로 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TV 음악감독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 그는 신인을 발굴하고 좋은 음향으로 음악을 알리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강승원이 가수로 이 무대에 선 것은 94년 4월 29일 마지막회였다. 그때 부른 노래가 '서른 즈음에'였고, 이날 출연했던 김광석이 "형, 그 노래 나 줘" 하기에 곡을 줬다. 김광석은 두 달 뒤 나온 마지막 정규 음반에 노래를 실었다. 강승원도 그해 말 '우리동네 사람들'이란 그룹을 만들어 이 노래를 발표했으나, 이미 서른 살을 통과한 이들에게 '김광석 노래'가 된 후였다. 이후 그는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거쳐 현재 '유희열의 스케치북' 음악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부끄러워요. 내가 음악 만드는 데 재주가 있다면, 무대 서는 재주는 없나 봐요." 이번 타이틀곡 '나는 지금'도 이적에게 줬다. 지난주 온라인에 공개된 '강승원 1집 만들기 프로젝트'의 '나는 지금'은 이적과 강승원이 각각 불렀다. "젊은 여자들이 내 노래 들으면 처음 듣는데도 울더라"는 강승원의 말처럼, 이 노래는 오랜 시간 손때 묻어 온 목재 같은 느낌을 준다. 반주와 코러스가 화려한 이적의 노래가 정교하게 세공(細工)된 앤티크 책상이라면, 기타 한 대에 맞춰 툭툭 던지듯 부른 강승원의 노래는 세월을 견뎌온 고찰(古刹)의 문짝 같다.

'강승원 프로젝트'는 앞으로 존 박, 윤하, 윤도현, 장기하, 성시경, 박효신, 조원선 등이 부른 강승원의 노래들로 연말까지 이어진다. 총 13~14곡이 나오면 비로소 음반으로 묶여 나온다. "데뷔가 늦어져서 안타까운 건 사춘기를 관통하는 노래를 만들지 못한 거예요. 송창식의 '한 번쯤'이 그런 노래였죠. 한 여학생을 따라다니던 시절에 '어떻게 이 노래는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지?' 했거든요. 앞으로도 그런 노래는 못 쓸 거예요." 대신 강승원은 '사춘기(四春期)'를 관통하는 노래 '나는 지금'을 이제 막 내놓았다.